Al - 2-5
5.
“고…양이요.”
“네. 고기를 잘 먹거든요. 이왕 먹는 거 좋은 걸로 주고 싶어서…….”
선우는 안에서 검은 봉지를 들고 나오는 사장님을 보고 말을 멈췄다.
“여기 받아, 손질도 다 끝냈어. 그리고 이거는 우리 거래처에서 새로 공장 만들었다고 맛보라고 준 육포인데, 맛이 괜찮아. 서비스로 좀 넣었으니까 맛 좀 봐.”
“아유, 감사합니다.”
환히 웃으며 봉투를 받아 들었다. 계산까지 마친 선우는 옆의 여자에게도 눈인사했다.
“저는 이만. 조심히 가세요.”
“네.”
여자의 시선은 멀어지는 선우의 등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잠시 후 검은 세단이 다가와 가게 앞에 멈춰 섰다.
우연은 제 향수를 휙 던지며 부하들에게 턱짓했다.
“따라가. 늑대 구역이니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고.”
“예. 알겠습니다.”
* * *
현관문을 열자 고양이는 역시나 미리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선우는 봉투를 내려놓고 고양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배고팠지. 형이 금방 맛있게 해 줄…….”
“캬악!”
고양이가 펄쩍 뛰며 단번에 삼 미터 뒤로 몸을 피했다. 온몸의 털을 삐죽삐죽 세우고 원래도 통통하던 꼬리도 펑 터져 두 배로 커졌다. 기듯이 몸을 바닥에 붙인 채 선우를 바라보는 눈이 꼭 배신이라도 당한 분위기라 선우 역시 당황해 놀라지 않게 천천히 손을 거뒀다.
“야옹아. 왜. 무슨 일 있어?”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자 고양이는 경계 태세를 거두지 않은 채 어슬렁어슬렁 선우의 주위를 맴돌았다. 놀라 확장되었던 동공이 점차 작아지고 곧 다리에 털을 부비고 두 발로 서서 몸을 숙여 달라 재촉했다.
선우가 무릎을 굽혀 자리에 앉자마자 뜨겁고 축축한 혀로 얼굴이며 목, 어깨를 마구 핥기 시작했다.
“앗, 으하하. 따가워. 인마. 간지러워.”
삐융삐융 울어 대며 겉옷을 물고 뜯는 모습에 선우도 긴장을 풀었다.
“따갑다니까. 뭐 때문에 그렇게 놀란 거야. 형이 어? 너 주려고 육포도 가져왔는데.”
고양이는 결국 선우가 벗어 준 겉옷을 물고 뜯고 마구 머리를 흔들었다. 한쪽 소매가 찢어지고 나서야 족한 듯 다가와 선우가 푹 고아 준 백숙을 얌전히 먹었다.
아까의 모습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챱챱 소리를 내며 백숙을 먹는 고양이를 보며 선우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고양이 키우는 건 힘들어.
* * *
자정 지난 새벽, 어둠 사이 푸른 눈이 번뜩였다. 선우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현채는 조심히 몸을 일으켜 저를 안고 있던 품에서 빠져나왔다. 품 안의 온기와 보드라운 부피가 사라지자 인상을 찌푸린 선우가 작게 뒤척였다.
얼마 후 숨소리가 잠잠해지고 가슴팍이 다시 일정하게 오르내렸다. 여기까지 본 현채는 침대 밑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도톰한 발바닥과 그를 둘러싼 푹신한 털들이 충격을 흡수해 작은 소음조차 나지 않았다.
꼬리로 침실 문을 닫고 느긋하게 현관으로 나갔다. 문손잡이를 잡아당기며 잠금부에 손바닥을 대자 문이 열리는 기계음도 잦아들었다.
계단을 타고 밖으로 나가자 수많은 동물들의 페로몬이 뒤섞여 느껴졌다. 분홍빛 코가 씰룩씰룩 움직였다. 가장 짙은 건 늑대의 것. 그 사이로 미세하게 느껴지는 설표의 냄새를 찾고는 곧바로 뒤를 쫓았다.
어둠 속에 눈을 빛내다 순식간에 뛰어올라 놈의 목을 물었다. 발버둥 치던 여자는 현채의 페로몬을 알아채고는 펑 하고 본체로 변했다. 배를 드러내고 누워 항복 의사를 표하는 갈색 표범의 얼굴을 두툼한 발바닥으로 꾹 누른 현채는 눈을 굴려 다음 타깃을 잡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잡혀 온 네 마리의 표범이 얌전히 머리를 박고 고개를 숙였다. 현채는 검은 놈부터 노란 놈까지 서릿발같이 시린 눈에 담으며 이를 드러냈다.
– 내 거야. 손대지 마.
– 도련님…. 가족들이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중 용기 있게 입을 연 검은 표범에게 현채가 성이 나 크게 울부짖었다. 주위 늑대들에게도 들렸을 소리에 다들 놀라 귀를 쫑긋댔지만 현채만은 개의치 않고 으르렁대며 경고했다.
– 방해하지 마. 주위에 얼쩡거리지도 마.
그 말만 남기고 뒤돈 현채는 왔던 것처럼 순식간에 집으로 올라갔다.
이윽고 경계를 서는 늑대들의 울음소리에 표범들은 서둘러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날이 밝았을 때, 은우연에게 보고가 들어갔다. 단숨에 넷을 제압하고 페로몬으로 본체화를 유도했다는 말에 은우연의 눈이 번뜩였다.
“……막내. 크고 있구나.”
* * *
고양이의 덩치가 꽤나 커진 순간부터 선우는 녀석을 데리고 밖에 나가려 들었다. 서린이 그럴 필요 없다고 극구 만류했고 고양이 역시 딱히 답답해하지 않았는데도 개 수인인 선우의 머리로는 자꾸 부족하게만 느껴진 탓이다.
하지만 보다 전문가인 서린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며 옥상에 있는 정원에 가서 노는 것으로 극적인 합의를 보았다. 선우가 사는 건물의 입주민들은 잘 쓰지 않는 곳이라 관리가 잘되어 있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고 벤치나 화단 같은 조형도 적었다. 그래서 오히려 고양이와 뛰어놀기에는 좋았다.
어릴 때 말고 이렇게 동물 모습으로 자주 돌아간 적이 있었던가. 어느 정도 커서는 제 본체를 숨겨야 하는 것으로 인식해 더 그런 걸지도 몰랐다. 개 수인인 자신이 늑대 무리 사이에서 지내기 위해선 개의 모습보다 사람인 쪽이 나았으니까. 그런 편이 무시당할 일도 없고 뒷얘기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본체로 돌아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숨이 차도록 뛰노니 굉장히 기분 좋았다.
아직 제 반 정도밖에 크지 않은 고양이는 매우 민첩하고 점프력이 뛰어나 공을 몰던 선우에게서 몇 번이나 공을 빼앗아 갔다. 가볍게 놀아 줄 의향이던 선우가 진심이 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밥시간이 지나도록 한참 뛰어놀다 지친 선우는 고양이와 잔디 위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봤다. 숨을 고르며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 시간이 유독 기분 좋았다.
어느새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간 선우가 중얼거렸다.
“오늘 하늘 되게 맑다. 꼭 네 눈 색 같네.”
“…….”
“아니다, 네 눈이 더 예뻐. 맑고 투명해서…… 나중에 너 돌아가더라도 하늘 보면 네 생각 날 것 같다.”
고양이가 꾸물꾸물 타고 올라와 선우의 몸 위에 자리를 잡고 엎드렸다. 순간 가슴을 압박하는 무게에 숨이 턱 막혔다.
“허윽. ……우리 애기. 언제 이렇게 무거워졌어.”
선우가 힘들어하거나 말거나 물끄러미 바라보던 고양이는 양발을 가지런히 모은 채 그 위에 얼굴을 올려놨다. 두툼하고 복실복실한 발이 흙먼지로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갈색 신발을 신은 듯한 모습에 선우는 발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발 더러워진 것 봐. 씻어야겠다.”
“삐이.”
“싫어도 안 돼. 오늘은 풀밭에 뒹굴었으니까 목욕이다.”
고양이가 절망한 듯 고개를 풀썩 떨궜다. 싫은 척하지만 막상 욕조에 물을 받아 주면 나름 기분 좋아할 걸 알았다.
발바닥의 까맣고 말랑말랑한 패드가 중독성 있어 두 손으로 잡고 만지작거렸다. 꾹꾹 누를 때마다 날카로운 발톱이 모습을 보였다 사라졌다 했다. 햇빛 아래 번뜩 빛나는 반투명한 발톱 끝을 보며 ‘깎아 줘야 하나?’ 고민했지만, 첫날 팔에 상처를 본 이후 고양이가 제게 발톱을 드러낸 적이 없는 데다 발톱이 감춰진 발이 워낙에 통실하고 복슬복슬해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 예쁜이. 발톱도 멋있고 날카로운 것 봐. 사냥도 잘하겠네. 완전 호랑이네.”
헤헤 웃으며 팔불출처럼 발을 잡고 흔들다 고양이의 홀쭉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 그대로 품에 안아 들고 일어났다.
“배고프지? 얼른 씻고 맘마 먹자.”
선우가 두문불출한다는 소문은 금세 퍼져 나갔다. 최이원과 남준우, 심지어 부모님에게서까지 무슨 일 있냐며 연락이 왔지만 차마 고양이를 기르는 중이라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어 대충 둘러대기만 했다.
늑대 일족은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서로 유대감이 깊은 만큼 폐쇄적인 성향 또한 짙었다. 고양잇과나 원숭이 등은 특히나 싫어하는 터라 선우가 알기론 제 무리 중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둘러대는 거야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대부분 의심 없이 넘어갔으나 가끔 흠 없는 핑계에도 유독 귀찮게 달라붙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마치 하승빈 같은 놈들.
욕조 가득히 따듯한 물을 받아 놓고 고양이와 함께 노닥거리는데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서져라 두들기며 연속해 초인종을 누르는 통에 시끄러워 인상을 찌푸린 선우는 욕조에서 일어났다. 고양이가 저를 따라 나오려 발버둥 치자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깐 있어. 금방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