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 - 2-4
4.
상념에 잠긴 사이 눈앞에 팔락이던 나비 모양 장난감을 잡으려 펄쩍 뛰어오른 고양이가 선우의 가슴팍에 착 떨어졌다. 살짝 드러났던 발톱을 쏙 감추고 푹신한 털과 말랑한 패드로 묵직한 무게를 가누는 고양이는 가슴 위가 꽤나 편한지 자리를 잡고 갸르릉댔다. 쓰다듬어도 눈을 감고 머리를 부비는 고양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혹시 주인이 계속 안 나타나면 어떡하지.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래도 한번 경찰서 다녀올까? 집 가고 싶지 않아?”
볼을 간질이며 묻자 훌쩍 뛰어내린 고양이가 커다란 앞발로 보란 듯 켄넬을 후려쳤다. 우당탕탕 굴러가는 켄넬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소파 위로 뛰어오르더니 새로 산 휴대폰을 물고 저를 멀뚱히 바라봤다.
왜인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만 같아 선우는 난감한 얼굴로 천천히 손을 뻗었다.
“……야옹아. 안 돼.”
고양이가 두툼한 앞발 옆에 휴대폰을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살짝 발바닥이 보이게 비튼 모양이 꼭 성질 나면 휴대폰을 후려쳐 부수겠는 협박처럼 느껴져 삐질 진땀이 흘렀다. 갑자기 뭐 때문에 성질이 난 건지는 몰라도 산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은 휴대폰이 부서질 위기에 처하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고민 끝에 천천히 입술을 뗐다.
“집에 가라고 하지 말까?”
“삐이.”
그제야 고양이가 훌쩍 뛰어내려 곁에 찰싹 붙어 앉았다. 선우는 안도의 한숨을 뱉으며 고양이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어느 날 불쑥 찾아온 고양이는 순식간에 제 온 신경을 다 집어삼켰다. 제 종적을 물끄러미 따라오는 서릿발 같은 푸른 눈이나 어느 순간 옆에 따라붙는 뜨끈한 온기. 꼭 제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행동하며 조용히 갸르릉 우는 소리 같은 것들.
수업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도 미안할 지경이 되었다.
“남선우, 오늘 체교과랑 축구 하는데. 낄 거지?”
“아니. 나 가 봐야 해.”
“안 돼, 니 빠지면 사람 부족하다고.”
“그쪽에서도 하나 빠지라고 해. 미안. 간다!”
후다닥 가방을 메고 사라지는 선우의 뒷모습을 동기들이 멀뚱히 바라봤다.
“쟤 요즘 무슨 일 있냐? 맨날 어디 가는 거야?”
“집 간다는데.”
“집에 뭐 좋은 거라도 숨겨 놨나…….”
선우는 정해진 루틴처럼 정육점에 들러 고기를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면 졸음을 눈에 매단 고양이가 조용히 침실에서 걸어 나왔다.
“오래 기다렸어? 얼른 밥 먹자.”
옷을 갈아입고 고기를 삶는 동안에도 기분이 좋은지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졸졸 따라다니기까지 했다. 배가 고픈지 선우의 다리를 짚고 두 발로 섰다.
“조금만 기다려. 거의 다 됐……. 음?”
선우는 집게를 내려놓고 몸을 숙여 고양이를 들어 올렸다. 예상보다 훨씬 무거워 전완근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아이고, 무거워라.”
묵직하게 늘어지는 고양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좀…… 컸나?”
“캬웅.”
옅었던 털 무늬도 조금 진해진 것 같고. 눈도 얼음처럼 투명하고 푸르게 빛난다. 마냥 예쁜 모습에 선우는 고양이의 얼굴에 연거푸 입을 맞췄다. 고양이는 그릉거리는 소리를 내면서도 얼굴을 피하지 않았다.
서린의 말대로 신고하지 않길 잘했다. 이렇게 예쁘니 분명 주인이 아닌데도 노리는 사람이 많았을 거다. 그러나 매일같이 신고 현황을 확인하며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말 주인이 나타난다면…… 그땐 보내 줘야겠지. 조금 슬플 것 같은데.
잡념에 빠져 있던 선우는 냄비가 끓어 넘치고 나서야 화들짝 놀라 고양이를 내려놓고 불을 껐다.
고양이는 고깃국을 가장 좋아했고 삶거나 구운 고기도 잘 먹었다. 생고기는 먹긴 했으나 즐기지 않았다. 생각보다 먹는 양이 아주 많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걸 보면 전엔 밥을 잘 먹지 못했던 걸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서린이 가져다준 장난감은 안타깝게도 고양이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나마 관심 있어 하는 것이 제 꼬리라 선우는 저녁마다 본체로 돌아가 고양이와 놀아 줬다. 넓게 치워 놓은 거실을 마구 뛰어다니며 공 뺏기 놀이를 하기도 하고 엎치락뒤치락 레슬링도 했다.
개의 모습으로 보니 고양이의 성장이 더욱 눈에 띄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땐 목덜미를 물고 번쩍 들어 옮길 수 있었는데, 겨우 일주일 사이 이제는 목덜미를 물어도 잘 들리지 않고 애써 들어도 뒷다리와 꼬리가 바닥에 질질 끌렸다. 고양이는 원래 이렇게 빨리 자라나 싶었다.
밤이 늦어 고양이와 함께 침대로 향했다. 두툼한 하얀 발 아래 깔린 제 꼬리를 슬쩍 흔들어 반대로 넘기자 고양이는 풀쩍 뛰어 잡으려 들었다. 슬렁슬렁 흔들리는 검은 꼬리를 잡고 놀던 고양이는 곧 피곤한지 꼬리를 덥석 물고 저를 빤히 쳐다봤다. 하는 짓이 귀여워 뒷발로 이마를 쭉 밀어내니 삑삑 울기나 했다.
– 이리 와.
콧잔등으로 옆의 이불을 들치며 부르자 고양이는 생겨난 공간에 엎드려 누워 통통한 제 꼬리를 살랑댔다. 뜨끈뜨끈한 선우의 체온이 기분 좋은지 고롱대다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선우는 제 몸 위에 덮듯이 놓인 통통한 꼬리를 바라보다 픽 웃고는 몸을 둥글게 말고 잠들었다.
* * *
냉장고를 살펴보던 선우는 침음을 삼켰다. 큰일이다. 닭고기가 없다. 오늘 점심에 가볍게 곁들여 준 닭고기를 맛있게 먹길래 저녁은 아예 닭고기를 메인으로 주려고 했건만. 사둔 줄 알았던 고기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일단 다른 고기를 줄까…… 잠시 유혹이 있었지만 말없이 밑에 앉아 저를 올려보는 푸른 눈을 보자 순식간에 결심이 섰다.
“형 고기 사 올게.”
옷을 걸치자 꾸룩대며 온몸으로 싫은 티를 낸다. 선우는 신발까지 다 신어 놓고는 현관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고양이의 분홍빛 배와 검은 발바닥, 동그란 볼 할 것 없이 연거푸 뽀뽀하고 깨물며 한참을 간지럽히다 몸을 일으켰다.
“금방 다녀올게. 기다려.”
“캬웅.”
고양이는 고기라면 가리지 않고 잘 먹긴 했으나 그래도 개중 유독 더 좋아하는 것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고기 질의 차이인 듯싶었는데 선우는 잡식이라 그런지 그 차이를 구별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대체로 고양이가 잘 먹는 정육점을 뚫어 놓아 조금 멀어도 거기까지 가곤 했다.
가깝진 않지만 차를 대기도 마땅치 않은 곳이라 산책 겸 걸어가는 동안 뒤따르는 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봤다. 분명 귀가 간지러웠는데 골목엔 아무도 없었다.
“……착각인가.”
그냥 바람이 분 것일 수도. 요즘 고양이랑 사냥놀이를 하다 보니 감각이 너무 예민해졌나 보다.
선우는 귀를 털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선우 왔어?”
선우를 맞이한 정육점 사장님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와서 고기를 사 가는 단골 아니던가. 게다가 처음엔 이것저것 다양하게 사 갔다가 질 좋고 고급인 부위는 꼭 재구매를 하니, 한 달도 안 되는 사이 육식 수인들로 가득한 가게의 VIP 명단에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성격도 사글사글하고 잘생긴 게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사꾼의 오랜 촉으로 육식 동물, 그중에서도 늑대일 거라고 확신했건만 개 수인이라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하지만 지금은 친근하고 다정한 것이 퍽 잘 어울린다 싶었다.
“오늘은 뭐 줄까?”
“닭고기요. 있는 줄 알았는데 다 떨어졌지 뭐예요. 급하게 사러 나왔어요.”
“좋은 걸로 줄게 잠깐만 기다려.”
“네. 감사합니다.”
사장이 안쪽 냉장고로 들어간 사이 선우는 쇼케이스에 진열된 고기들을 구경했다. 아직 한 번도 사 준 적 없는 특수 부위 쪽으로 다가가며 고양이가 과연 저런 부위도 좋아할까 고민하던 차, 조금 뒤에 서 있던 여자와 살짝 부딪혔다.
“이런, 죄송합니다. 구경하느라 미처 못 봤네요.”
여자는 미안한 표정으로 꾸벅 고개 숙이는 선우를 선글라스 너머로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미 해가 져 어두운데 선글라스를 쓴 모습이 이질적이었다. 커다란 선글라스로 얼굴 반을 가렸음에도 언뜻 보이는 외모와 분위기가 대단해 내심 ‘연예인인가?’ 하고 생각하며 눈을 돌릴 때였다. 여자가 손을 뻗어 선우의 어깨를 잡았다.
“저기.”
“…무슨 일 있으십니까?”
“자주 오시나 봐요. 고기 사러.”
진지한 분위기와 다르게 뜬금없는 물음이었다. 선우는 쇼케이스를 돌아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요즘 자주 오는 편이네요. 여기가 제일 좋은 것 같아서요.”
“실례지만 혹시 늑대 수인이신가요? 아니면 여우?”
여자의 물음에 선우가 웃음을 삼켰다.
요즘 늑대 수인이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원과 한창 어울리며 그의 무리에 속하고 싶어 그렇게 남의 페로몬을 묻히고 입에 맞지 않는 고기만 뜯을 때에도 개 냄새는 못 속인다며 저를 늑대로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는데.
실없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가 먹을 건 아니고, 집에 고양이가 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