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 - 2-3
3.
– 근데 맛있다. 꼭 육식 동물 된 느낌이네. 이거.
혼자 중얼거리며 고깃국 맛이 나는 털을 핥는데 고양이는 알아듣지도 못할 거면서 고개를 갸웃댔다.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며 몸을 늘어트리는 모습이 조금 진정된 것 같아 놀라지 말라며 손으로 눈을 가리곤 다시 인간화했다.
도로 품에 안아 들자 고양이는 아까보다 훨씬 얌전했다.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털을 물로 가볍게 씻기고 또다시 털을 말리는 동안에도 투명하도록 파란 눈을 빛내며 선우를 빤히 바라봤다.
그저 말썽쟁이인 줄 알았는데 씻기는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배가 고팠나 싶었다. 우유나 키티용 사료에는 관심도 보이지 않았으면서 제가 먹으려던 갈비탕에 달려든 것이 아무래도…….
커다란 수건으로 돌돌 만 고양이를 부리또처럼 한 팔로 안아 든 채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냄비에 남은 갈비탕을 데우니 분홍빛 코가 씰룩씰룩 움직였다. 확실한 먹이 반응에 웃음이 터진 선우는 고기를 발라내고 국물을 적당히 식혀 넓적한 그릇에 담아 주었다. 고양이는 동그랗고 두툼한 귀를 쫑긋대며 맛있게 밥을 먹었다. 어찌나 맛있는지 목 안쪽에서 그릉그릉 소리까지 내는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고양이는 우유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 토끼는 당근, 말은 각설탕처럼 흔히 연상되는 이미지를 떠올리던 선우는 피식 웃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선입견이다. 그렇게 치면 개들은 뼈다귀만 물고 있어야지.
슬쩍 손을 뻗어 검지 끝으로 목을 쓰다듬자 고양이는 흘깃 눈동자를 굴리더니 딱히 거부하지 않고 다시 밥 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미안. 내가 고양이에 대해 잘 몰라. 우유면 다 잘 먹는 줄 알았는데.”
접시를 비운 고양이가 저를 멀뚱히 쳐다봤다. 입가의 털이 젖어 있는 꼴이 몹시 귀여웠다.
“더 줄까?”
고양이는 커다란 발로 접시를 툭 치며 재촉했다. 제 손바닥 반만큼 두툼한 앞발을 보며 큭큭 웃었다.
“발 큰 거 보니까 너 나중에 키 엄청 크겠다, 애기야.”
결국 남은 갈비탕을 모두 퍼 주어 배가 빵빵할 때까지 먹인 후에야 선우는 대충 냉동실에 굴러다니는 빵으로 배를 채웠다.
구석지고 어두운 공간을 좋아하는 것 같아 옷방 안쪽 먼지를 깨끗이 치운 뒤 두툼한 쿠션을 깔아 줬다. 그 위에 고양이를 올려 두니 어두운 곳에서 보석같이 반짝이는 푸른 눈 두 개가 가만히 선우를 응시했다.
“내일은 주인 찾아 줄게. 조금만 기다려. ……잘 자.”
동그란 배를 두드리고는 선우도 제 방으로 향했다.
* * *
옆구리에 닿는 따듯한 온기가 기분 좋았다.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는데 그릉그릉 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왔다.
선우는 옆자리를 더듬다 휴대폰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몸을 돌려 옆의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으음…… 언제 왔어.”
동그랗고 말랑말랑한 귀를 만지작대니 긴 속눈썹이 들리며 새파란 창공 같은 푸른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 진짜 예쁘다.”
두툼한 양손에 턱을 괴고 엎드린 고양이는 말없이 선우를 지켜보았다. 어젠 그렇게 경계심 많더니 이렇게 곁을 내어 준 것이 새삼 신기했다.
“배고프지? 밥 먹자. 어디 네가 먹을 만한 게 있으려나…….”
중얼거리며 걸어 나오던 선우의 발이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거실 한가운데 제 휴대폰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뭐야. 야옹아, 네가 그랬어?”
당황해 물었으나 아까 그 자세로 엎드려 저를 바라보는 고양이의 통통한 꼬리만 좌우로 살랑댔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화도 나지 않았다.
“……배가 고팠나.”
머리를 긁적인 선우는 냉동실에 박혀 있던 소고기를 꺼내 굽기 시작했다. 그제야 고양이는 삐약대며 총총, 곁으로 다가왔다.
밥을 다 먹은 후, 주인을 찾아 주기 위해 고양이를 근처 경찰서로 데리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전까진 마냥 얌전하던 고양이가 갑자기 엄청나게 반항하며 몸부림치더니 결국 침실에 있는 높은 옷장 사이로 도망쳐 버렸다. 선우는 고양이의 발톱에 할퀴어 옅게 피가 비치는 팔을 보며 ‘어렵네….’ 하고 중얼거렸다.
급히 나가 새로운 휴대폰을 하나 사고 경찰서로 향했다. 떠돌이 동물의 경우 인간화에 미숙한 어린 수인일 가능성이 있기에 우선적으로 신고해야 했다. 막 서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서린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 남선우. 나 도착했는데 어디야?
“벌써 왔어? 근처야. 바로 갈게.”
제 부탁으로 찾아온 서린이라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선우는 우선 차를 돌려 집으로 이동했다. 집에 도착하니 문 앞에 작은 켄넬을 든 서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팔은 괜찮아?”
“그냥 살짝 긁힌 거야.”
웃으며 문을 열자 현관 근처에 있던 인영이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뒤따라온 서린은 보지 못했는지 집을 둘러보며 고양이를 찾기 바빴다.
“고양이는 어디 있어? 안 보이는데.”
“방금 숨었어. 겁이 많은가 봐.”
“그래? 나 갈 때까지 안 나오겠네. 아, 근데…….”
서린이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코를 틀어막았다.
“이 페로몬 뭐지? 아…….”
“미안. 나 때문에 그래?”
“아니, 아니야. 선우 네 건 아닌데…… 최근에 집에 누구 온 적 있어?”
“올 사람이야 뭐, 이원이나 부모님 정도지.”
“늑대 냄샌가……? 아닌데, 늑대 누린내랑은 다른데.”
“개 앞에서 누린내라니 너무하잖아. 환기시켜 줄게. 들어와.”
선우는 실실 웃으며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서린은 그제야 짐을 들고 들어왔다.
서린을 부른 건 고양이의 주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고양이 수인인 서린은 실제로 고양이를 많이 키워 보기도 했다니까.
역시나 서린은 믿음직하게 가방에서 이것저것 꺼내기 시작했다.
“사료는 필요 없다고 했지? 간식만 가져왔어. 그리고 이건 장난감들이랑 켄넬.”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어차피 금방 주인 찾아 줄 텐데.”
대수롭지 않은 말에 서린이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정말 신고할 거야? 네 얘기 듣고 오는 길에 확인해 봤는데 아직 신고 들어온 건은 없더라고. 조금 더 데리고 있어 보는 게 어때?”
“무슨 말이야? 신고하지 말자고?”
“요즘 수인 학대 사건이나 불법 번식장 일들 때문에 걱정돼. 주인이라고 주장하면 별다른 절차 없이도 데려갈 수 있대.”
그제야 서린이 뭘 걱정해서 건네는 말인지 깨달은 선우가 느린 탄식을 흘렸다.
“정말 잃어버린 거면 주인도 신고할 거 아니야. 그때 보고 연락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럼 문제긴 하네. 고민해 볼게.”
음지의 사건들은 저도 들은 바 있었다. 저랑은 별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서린의 말을 들으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고양이가 좀 예뻐야 말이지. 아마 주인 아닌 것들도 고양이를 보면 자기가 주인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선우는 고양이가 있을 옷방을 흘깃 돌아보며 켄넬에 손을 올렸다.
“켄넬은 좀 작을 것 같다.”
“응? 아니야. 내가 가진 것 중에 제일 큰 건데. 개도 아니고 고양이가 크면 얼마나 크다고.”
“한 이쯤 됐지. 아마.”
양손을 벌려 크기를 가늠하자 서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새끼라고 하지 않았어?”
“응. 애긴데 덩치가 좀 큰 커.”
직접 보여 주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고양이를 찾으러 갔다.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으르렁거리며 싫은 티를 내는 바람에 서린이 먼저 나서서 말렸다.
“됐어. 싫다잖아. 안 봐도 돼.”
“오늘 아침엔 안 그랬는데.”
“원래 고양이들은 변덕 심해. 그리고 너 쟤한테 등 보이지 마라.”
“등? 왜?”
“업히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
돌아보기도 전에 등을 세로로 길게 긁고 지나가는 손톱에 오싹한 소름이 끼쳤다.
“……응. 조심해야겠다.”
이후로 몇 가지 더 도와준 서린이 이만 가 봐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배웅하고 돌아온 선우는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고양이의 모습에 헛웃음을 흘렸다. 아까까지는 꼭꼭 숨어서 보이지도 않더니 지금은 현관에 얌전히 앉아 마중하는 모습이 그저 웃겼다.
“서린이도 같은 고양인데 한번 만나 보지.”
두툼한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거실에 펼쳐진 고양이 용품을 가져다 장난감을 눈앞에 흔들어 보기도 하고 간식을 몇 개 꺼내 주니 조금 관심을 보였다. 귀여운 모습에 한참을 눈을 떼지 못했다.
동물을 키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저부터가 이미 반쯤 동물인데 굳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지금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수인들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갔다.
마침 이원도 바빠져 고양이를 챙겨 줄 여유가 있었다. 텅 빈 시간들이 조금 심심하던 차에 고양이의 존재가 반갑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