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 - 67
사랑하는 나의 악인에게 67화
그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자마자 뒤따른 건 눈앞이 순간 점멸할 정도로 거친 주먹질이었다. 수현은 크게 휘청했지만, 작년처럼 무력하게 쓰러지지는 않았다.
쓰러질 수 없었다.
그 방향엔 다운이 있다.
“어쭈, 씨발. 잘 왔다. 너, 예전에 저 병신 새끼 옆에 딱 붙어서 내뺐었지.”
“―워, 원장님, 다운이가…… 피가, 많이 나요.”
“닥쳐!”
그렇게 부실하게 먹고도 또래보다 성장이 빨랐던 수현은, 열다섯 살에 이미 키가 170cm를 넘었다. 지난해 원장에게 시달릴 때와 비교해도 고작 1년 만에 10cm 가까이 훌쩍 컸다.
그 ‘덕분에’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원장의 주먹과 발길질을 조금 더 잘 견디게 됐다면,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키워 준! 은혜도! 모르는, 벌레 같은 것!”
“큭, 윽……!”
“뭐? ‘좋은 기회니까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려고요?’ 이 씨발 새끼. 내가 얼마나 잘 대해 줬는데!”
맞는 건 수현이지만, 원장이 욕을 쏟아 내는 상대는 사실 따로 있었다.
수현은 그래서 더더욱 앓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제가 아파하면 다운이 슬퍼할 테니까. 늦은 밤, 악몽에 울며 깰 때마다 올라오지 못하는 2층 침대 아래에서 입술을 짓씹었던 다운이라면 분명 그럴 거였다.
“너희 같은 것들은 매가 약이야. 그냥, 아주 뒤질 때까지 맞아야 해. 그래야 감사함을 알지. 괘씸한 새끼들. 감히 나를 무시해?”
수현은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구타를 가까스로 견뎠다.
하지만, 머리를 감싼 채로 몸을 말아 웅크린 탓이었나. 발에 걷어차일 때마다 점멸하는 시야는― 아직 다 극복하지 못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하필 입 안이 찢어져 피가 난 것 역시 지독한 환각을 재생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길고양이에게 고작 간식 통조림 하나를 챙겨 줬다는 이유로 녹이 슨 양철 양동이를 머리에 쓰고 기어다니며 용서를 빌었던 그 추운 봄을.
그 꼴을 하고도 깜박 잠이 들 때면 곧장 캉, 캉, 차고 두드려 대는 소리에 놀란 심장이 도륙 나는 것만 같았던 밤을.
“―아악!”
수현의 눈이 번쩍 뜨인 건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와 함께 거센 발길질이 멈춘 순간이었다.
둔한 몸을 크게 휘청한 원장은 자신의 왼쪽 종아리를 붙잡고 있었다. 어둑한 와중에도 원장의 다리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액체가 보였다.
이런저런 공예에 취미가 있던 원장은 별채에 작업실을 작게 차려 두고 있었다. 물론 그마저도 알코올에 집어삼켜질수록 수전증이 생긴 탓에, 마음에 차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며 원생들에게 화풀이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됐지만.
원장은 자신의 종아리에 꽂힌 무언가를 끄으윽, 이상한 소리를 내며 확 빼냈다.
작은 아트 나이프였다.
그걸 꽂아 넣은 건 엉금엉금 기어서 기어이 원장, 김우석의 발치까지 향한 다운이었고.
“이 병신 새끼가!”
반사적으로 찔린 다리를 크게 휘둘러 다운을 차려던 원장은, 찌릿하게 타고 올라오는 통증에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심지어 제가 그렇게 아파했다는 것에 되레 더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는 제 주위를 휙휙 살피며 “어어, 그래. 잘난 천재님은 그 대단한 머리통 얻어맞는 거로는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다리 못 쓰는 거로는 성이 안 차는 모양이지. ―그래, 내가 이참에 휠체어가 아니라 침대 신세를 지게 해 줄 테니까. 이 씨발놈.”
“흑…….”
원장이 선택한 것은 유독 무겁고 단단해 보이는 철제 의자였다. 낡은 장판 위에서 질질 끌리는 의자가 끔찍한 소리를 내며 점점 다운에게 가까워졌다.
종일 쏟아진 폭력 앞에서도 단 한 번도 떨지 않았던 어깨가 작게 움츠러들었다. 그걸 본 원장은 절뚝이면서도 킬킬 술에 전 웃음을 터트렸다.
햇살 보육원의 폭군이 누군가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한 건 그 방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작년과는 달리 저와 키가 비슷해진 수현이 자신의 뒤에 선 것을 그림자로 착각한 탓일 수도 있고.
“……죄송해요.”
원장이 자신의 목에 닿은 것을 자각한 때는, 이 짤막한 사과를 들은 순간이었다.
‘무엇’이?
술과 폭력이 만든 흥분에 취한 채로 생각했지만 답을 내지는 못했다. 김수현 역시 그날, 제가 베었던 것이 무엇인지는 나중에야 알았다.
“―컥…….”
육중한 몸이 무너지면서 콰당, 스스로가 끌고 왔던 의자에 세게 부딪혔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모습으로 벌렁 드러누운 원장의 보랏빛 입술이 달싹거렸다. 사실 그건 무언가를 호명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 거다.
‘경동맥’과 ‘기도’.
인간은 이 두 가지가 잘리면 거의 즉시,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사망한다. 하지만 수현은 기억도 나지 않는 순간부터 쭉 제 보호자였던 사내가 마지막으로 토해 내는 경련에서 또렷한 세 글자와 거듭 뒤따르는 비난을 보았다.
김― 수― 현.
키워 준, 은혜도, 모르는. 이 벌레 같은 것.
“…….”
원장은 스스로의 목부터 시작된 붉은 웅덩이에 잠겨 갔다.
수현은 그날 이후 제가 손에 쥐었던 것의 무게와 촉감을 단 하루도 잊은 적 없다. 김수현, 이름 석 자 역시 누군가가 불러 주기 전까지는 매일같이 끔찍해했었고.
큰 소리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뒤늦게 저와 눈높이가 같아진 원장을 발견한 다운의 경악한 숨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마음 편하게 놀라고 있을 틈은 없었다.
오래된 별채의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새로운 방문자를 알렸기 때문이었다. 수현은 순간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다운의 앞에 선 다음 어둠을 향해 칼을 겨눴다.
“……이런.”
저 너머에서 들린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신원을 파악하기는 충분했다. 눈썹 위를 가볍게 가리는 자줏빛 모자를 쓴 여사는, 곧장 그들에게로 걸어왔다.
“동업자를 바꿀까 해서 왔는데. 아무래도 늦은 모양이지?”
수현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녀를 정조준한 칼을 거두지 않았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여사는 그런 수현을 흘끗 보더니 곧장 쓰러진 원장에게로 향했다. 모자에 드리운 그늘은 그녀의 얼굴을 죽음에 무딘 장의사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네가 한 거니?”
수현이 대답하지 않자, 여사가 다시 물었다.
“재능이 있네. 손 한번 안 떨고, 아주 깔끔해. 이름이 뭐니?”
“……걔는 왜요!”
칼을 쥔 자세 그대로 얼어붙은 수현 대신 거칠게 입을 연 건 간신히 상체를 일으켜 세운 다운이었다. 다운은 제 입 안에 고인 핏물을 신경질적으로 뱉어 내고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걔한테는…… 말 걸지 마요.”
“똑똑한 것 같았는데. 의외구나.”
“뭐라고요?”
“순진한 걸까, 아니면, 상황 파악이 안 된 걸까.”
“…….”
“차라리 앞에 것이 나은데 말이야.”
다운이 부은 입술을 습관적으로 짓씹으려다가 외려 윽, 하고 작은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차가워진 머리만큼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세상은 절대 공평하지 않다.
대우와 처벌조차 상대적으로 달리 주어진다.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다. 특히 이 사회가 가장 엄하게 보는 건 소위 괘씸죄다. 수현에게 끝없는 악몽을 남기고, 저를 말 그대로 ‘죽기 전’까지 팼던 김우석 역시 마찬가지였지 않나.
이 보육원 바깥엔 동정했던 장애인이 자신보다 좋은 성적표를 받기만 해도 손바닥 뒤집듯 분노하는 인간들이 가득한데.
보잘것없는 고아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보호 기관의 원장을 죽였다고 하면.
그럼, 김수현은…….
다운은 잔뜩 찢어진 입술 위로 이를 내어 다시 한번 으득 씹었다.
“……뭘, 보장해 주실 건데요?”
“보장?”
정말로 우스운 말을 들었다는 듯한 코웃음이 돌아왔다.
“그런 건 없어. 넌 어느 정도 눈치챈 것 같던데. 아니니?”
“…….”
“약속할 수 있는 건, 난 죽게 내버려 둘지언정 때리지는 않는다는 것 정도란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된다고 고개를 저을 조건일 거다. 하지만 이 해가 들지 않는 곳에 사는 누군가에게는 죽는 것보다 나은 선택지였기도 했다.
“기본적인 생활이나 공부 같은 건요?”
“너무 바라는 게 소박하구나.”
“……제대로 대답하시라고요!”
여사의 감정 없는 눈이 두 소년을 번갈아 봤다. 잠시 침묵했던 그녀는 담담히 대답했다.
“의식주와 원하는 공부는 무엇이든 지원하마. 그다음부턴 온전히 너희 능력에 따라 달린 거지만.”
정다운은 죽은 남자에게서 사후 경직이 시작되기 전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먼저 말을 건 상대는 여사가 아닌 다른 쪽이었다.
“……수현아, 나 좀 도와줘.”
안팎으로 가득한 쇠 냄새 앞에서 멍하게 넋이 나간 수현의 고개가 기계처럼 움직였다. 반쯤 풀린 까만 눈은 현실과 무의식 사이를 떠다녔지만, 제 유일한 친구의 말만큼은 놓치지 않고 들은 듯했다.
힘이 빠진 손에서도 그제야 툭, 쥐고 있던 것이 떨어졌다. 이제는 숨을 쉬지 않는 남자가 조각할 때 쓰던 묵직한 커터 칼이었다.
하지만 수현은 그걸 주워 드는 것 대신 바닥을 뒹굴던 휠체어를 먼저 바로 세웠다. 다음은 작고 마른 다운이었다.
“우리, 같이 가자.”
“…….”
“가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는 거야. 씨발, 이 좆같은 곳에서도 버텼는데. 다른 데서 안 되겠어?”
수현의 눈은 여전히 초점이 없었다.
하지만 다운을 휠체어 위로 앉히는 움직임만큼은 여전히 터무니없이 상냥하고 조심스러웠다. 덕분에 겨우 울음을 삼킨 다운이,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이자, 가족에게 거듭 속삭였다.
“이제 다른 사람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우리만 챙기자. 응?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다 좆 까라고 해.”
“……무서워.”
처음으로 작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건 사고를 거쳐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제 안에 소용돌이치는 모든 것을 단 세 글자에 겨우 담아 토해 낸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다운 역시 ‘나도 그래’, 같은 솔직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저보다 훨씬 더 키가 큰 소년을 마른 팔로 당겨 안고 말했다.
“괜찮아. 거기서는 내가 너를 지켜 줄게. 꼭.”
그날 밤. 유령과 그를 지키는 특별한 수호천사의 탄생을 지켜본 건 작은 창문 너머의 천체와 여사, 단 둘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