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 - 66
사랑하는 나의 악인에게 66화
화창한 토요일이었던 그날.
수현은 아침 일찍 병원을 다녀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부터가 이상했다. 고작 약한 감기 기운 때문에 병원에 가다니. 하지만 원장이 “너 하나 아파서 단체로 콜록거리는 꼴 봐야겠냐?”라고 빈정대는 말에 떠밀려 별 의심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무언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시작한 건 병원을 다녀온 다음이었다. 다운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보육원 여기저기를 몇 바퀴나 돈 수현은, 결국 원생 몇 명을 붙잡고 물었다.
“혹시 다운이 봤어?”
“네? 아뇨. 못 봤어요.”
“저도요. 그러고 보니 다운이 형, 아침 식사 시간에도 없던데.”
다운이 밥을 거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아무리 맛없는 음식이 나와도, ‘세상에 내 몸 챙길 사람은 나밖에 없다’라는 지론하에 꼬박꼬박 삼시 세끼를 챙기는 게 다운이었다.
하지만 그 때, 수현을 쿡쿡 찌르는 작은 손이 있었다. 보육원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축에 드는 여자아이였다.
“……원장님이 부르던 거 같았어요.”
모두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원장이 다운을 데려갔다면 전개야 뻔하다. 후원금을 위한 인사 자리에 데려갔다든가, 인터뷰가 잡혔거나. 뭐가 됐든 이 보육원의 안녕을 위한 일에 동원되었을 거였다.
“알려 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오늘 오후는 혼자임이 확실해진 수현은 터덜터덜 휴게실로 향했다. 늘 함께하던 다운은 없지만, 그래도 도서관에서 빌린 우주를 주제로 한 책이 있어 심심하지만은 않을 터였다.
천체에 대한 수현의 관심은 역사가 깊었다.
특히 하늘을 가득 채운 것들 중에서 유독 달을 좋아하게 된 건 이즈음부터였다.
그 동그란 위성은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운 더위이면서 누군가에게는 휴양의 상징인 태양처럼 가혹하지 않았다. 또, 두 눈으로 보기 위해서 어느 늦은 밤, 별이 잘 보이는 곳으로 함께 놀러 갈 부모님도 필요 없었다.
달은 그저 땅 위의 모두에게 같은 조건만을 내놓을 뿐이다.
구름이 없는 맑은 날씨. 고작 그것 하나면, 별이 사라진 도시에서도 모양과 빛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차가운 공평함 속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해도 좋을 거다.
하지만, 휴게실에 도착한 수현은 좋아하는 책에 도통 집중할 수가 없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원생들이 저만치서 떠는 수다 때문이었다.
“야, 아침에 원장이랑 미국 여사님이랑 싸웠대.”
저도 모르게 그들을 휙 쳐다볼 뻔했던 수현은, 가까스로 숨죽이는 데 그쳤다.
“뭐? 왜?”
“몰라. 그런데 원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면서 고함쳤다는데? 준영이가 쓰레기 버리러 가다가 들었다더라. 막 욕도 들리고 살벌했대.”
“에이. 뭐 착각한 거겠지. 원장, 미국 여사님 눈치 엄청 보잖아.”
“하긴, 여사님 오기 전날에는 빡빡 씻으라고 온수까지 틀어 주는 인간인데.”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보육원생들의 대화 주제는 몇 초 단위로 바뀌었다. 원장과 미국 여사와의 다툼 역시 ‘뭐, 그런가?’를 끝으로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수현은 몰래 엿들은 이야기에서 쉬이 빠져나오지 못했다. 며칠 전, 다운과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수현아. 있잖아, 미국 여사님이 나한테 유학 생각해 보래.”
“유학? 미국으로?”
“으응. 아직 원장한테는 말은 안 했다는데.”
“우와!”
역시 어딜 가나 똑똑하다는 말을 휩쓸고 다니더니, 유학이라니!
자려고 누웠던 수현은 저도 모르게 2층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곧장 아래층에 누운 다운을 보자, 기쁜 소식을 전한 친구는 예상과는 달리 영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엄청 좋은 일이잖아! 표정이 왜 그래?”
다운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뒤 열린 입에서 나직이 흘러나온 것 역시 되물음이었고.
“……너는 그 여사님이 데려간 애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 거 같아?”
온갖 곳에서 천재라는 찬사를 받는 것과는 별개로, 다운은 평소에 젠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해할 수도 없는 공식들이 가득 적힌 책을 읽으면서도 단 한 번도 거들먹댄 적이 없다. 오히려 언제나 쉽게 말해 주는 쪽이었지.
하지만 왠지 그때만큼은 다운의 말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실 고작 몇 달 뒤엔 감탄하게 되는 통찰이었지만, 수현은 제 순진했던 대답을 자책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아예 틀린 대답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잘 지내고 있지 않을까? 좋은 가족들 만나서.”
“…….”
“물론 갑자기 환경이랑 언어가 바뀌는 건 많이 힘들겠지만……. 그래도 여기보단 낫겠지. 왜, 뭐가 마음에 걸려?”
“……아니야. 미안, 내가 쓸데없는 얘길 했다. 얼른 자자.”
수현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 건 제 친구가 아주 먼 곳을 보는 것 같은 눈을 해서였다.
물론 기회가 주어졌어도 ‘네가 없으면 엄청 쓸쓸할 거 같아’ 따위의 초 치는 소리는 입 밖에 내지 않았겠지만. 다운의 묘한 표정과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수현은 ‘미국 여사님’이 보육원을 들락날락 할 때마다 촉각을 곤두세웠다.
비밀스러운 유학 제안. 원장과 여사의 다툼. 그리고,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다운까지.
수현은 저도 모르게 차곡차곡 연결하고 마는 것들이 제 과민함이길 바랐다. 하지만 공연히 원생들에게 시비를 거는 원장 김우석은 종일 보이지 않았다. 다운 역시, 취침 시간까지 자리를 비웠고.
먼 곳을 갔을 리는 없다.
외출용 휠체어는 함께 쓰는 침실 한편에 그대로 있으니까. 수현은 취침 지도를 하는 직원이 슬쩍 방을 훑어보고 나가는 걸 허둥지둥 붙잡았다.
“―저, 선생님. 다운이 아직 안 왔는데요.”
“……원장님이랑 이야기 중일 거다. 어서 자!”
막연했던 불안이 어떠한 확신이 된 건 아마 그 순간이었을 거다. 타인에게 친구의 행방을 물어봤자, 절대로 답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1년 전의 경험 덕분이다.
수현은 보육원의 불이 꺼지고, 어떤 ‘어른’들도 돌아다니지 않을 때쯤에야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마찬가지로 살금살금 돌아다니던 원생 몇 명과는 어색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깊은 밤이었지만 길을 잃지는 않았다.
그날의 달은 유독 크고 밝았고, 몸소 겪었던 순간들 역시 나침반이 되어 수현을 이끌었다.
알코올 중독인 김우석은 최소한 낮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외부인이 올지 모르니까.
하지만 이렇게 밤이 되면.
그를 지켜보는 것이 저 하늘의 금색 외눈만 남았을 땐…….
“―정다운!”
작년, 활동실의 창틀 가운데에 서게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찾아간 별채. 언제나처럼 잠기지 않은 문을 열고 안을 살피자 가장 먼저 보인 건 바닥을 나뒹구는 휠체어였다.
수현은 그 옆에 힘없이 늘어진 마른 몸을 향해 달려갔다.
“다운아, 정다운, 대체 이게 뭐야……. 어떡하지, 아.”
차라리 저를 때렸을 때처럼 눈에 띄지 않는 곳들을 발길질했으면 나았을까?
수현은 어느 쪽도 끔찍한 가정을 두고 안절부절못했다.
여기저기가 기괴할 정도로 부어오른 다운의 얼굴은 대체 몇 번이나 코피가 터졌다가 그치기를 반복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미 검게 변한 피딱지 위로 다시금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일부러 머리만을 때린 것 같은 모양새였다.
어딜 만지거나 붙잡으면 너무 아플 것 같았다. 차마 다운을 건드리지 못한 손이 부질없이 덜덜 떨렸다.
갈라진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가.”
눈이 너무 부어 다운이 저를 보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수현은, 그 외마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다운아, 응? 뭐라고?”
“여기, 있으면…… 안 돼. 빨리, 가, 김수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씨. 그냥, 가서 자라고.”
“너 이렇게 두고 무슨 잠을 자!”
저도 모르게 커지려던 목소리를 붙든 건, 원장에게 머리를 가볍게 한 대만 맞아도 골이 울리던 걸 상기해서다.
하지만 다운의 얼굴에서 묘한 부조화를 발견한 것도 그 순간이었다. 모든 곳이 퉁퉁 부어오른 상태이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코가 조금 이상했다.
사실, 머리만 이렇게 집중적으로 때렸는데 다른 곳도 멀쩡하리란 확신을 할 수도 없었다.
“―너 병원 가야 돼!”
“……안 돼, 얼른 나가…….”
“잠깐만 기다려, 다운아. 내가 119 부를게.”
“수현, 아.”
“몰래 본관 들어가서 전화하면 돼!”
다운에게서 목소리 대신 기괴한 헐떡임이 흘러나왔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입 안에 고인 핏물이 기어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 듯했다. 하지만, 애초에 다운은 그리 힘겹게 경고해 줄 필요가 없었다.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훅 풍기는 지독한 술 냄새.
열다섯 살의 수현은 이것을 다운보다 한 해 먼저 경험했으니까.
“뭘 불러?”
원장, 김우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