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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4
인어 공주는 설명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저는, 그런 뜻으로 행동한 게….”
“아닙니까? 뭐가 아니라는 말입니까? 이안 님께 화낸 사람이 당신이 아니라는 겁니까? 아니면 그분을 골방에 가둔 사람이? 그러고도 모자라 병사들을 보내 위협한 사람이?”
인어 공주는 뒤의 두 가지 일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슬퍼했을 뿐이고 성의 주인이 박대한 손님이 어디로 갈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제가 명령한 게 아니에요! 저는 여러분들이 갇힌 채 감시받으리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당신이 명령을 한 게 아닙니까?”
“예!”
“당신은 이 성의 주인이 아닙니까? 당신을 따르는 어인들이 당신의 뜻을 무시하고 이안 님을 박대했다는 의미입니까?”
“그, 그런 것은….”
성내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거슬렀을 리 없다. 인어 공주는 외면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이 성의 주인이 맞았고 성의 가솔은 모두 그녀를 위해 일했다.
인어 공주는 자신의 일가를 위해 평생 일해 온 사람들을 팔아먹을 정도로 양심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이안 님을 박대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고, 지금의 사태에는 아무런 책임도 없으며, 잘못은 모두 아랫사람의 일이라는 얘기군요.”
키이스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에요!”
인어 공주는 비명처럼 외쳤다. 키이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채찍처럼 그녀를 내리쳤다.
“죄송해요, 모두 제 잘못이에요! 제가 마음이 좁고 생각이 짧았어요. 성안 사람들은 아무 죄도 짓지 않았어요! 다 저의 죄예요.”
“그러리라 생각했습니다. 당신처럼 책임감 없는 위정자를 처음 본 것도 아니니까요.”
“아닙니다! 공주님이 명령하시지 않았습니다, 전부 저의 명령….”
나서려는 어인 내관을 공주가 말렸다.
“맞아요, 정말이에요. 저는 은인을 원망하고 가두기까지 한 끔찍한 공주예요! 흑, 아바마마….”
공주는 자신이 언제고 끔찍한 실수를 저지를 줄 알았다. 그래서 임시로라도 왕위에 오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언제고 아바마마가 돌아오리라는 기대는, 사실 기대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그녀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아바마마는 돌아가셨다. 그녀를 지켜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성을, 도시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그녀였다. 하지만 책임지지 않으려 한 탓에 그녀는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야 만 것이다.
‘끝났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자, 오히려 인어 공주는 마음이 편해졌다. 그녀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벌벌 떨며 천상의 기사에게 청했다.
“죄를 지은 것은 저이니 저를 벌해 주세요. 이 해저 도시의 다른 사람들은 부디 아량을 베풀어 너그러이 보아주시고…. 흐윽…. 죄송하지만 되도록 빨리… 아프지 않게… 목을 쳐 주시면 안 될까요?”
그녀가 훌쩍였다. 기사의 침묵이 두려웠다.
“안 됩니다, 공주님!”
애절한 주종 관계를 보며 키이스는 검을 도로 허리에 찼다. 이 공주가 무능하다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책임감과 머리가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는 본래 한번 한 판단을 잘 바꾸는 사람이 아니었다. 벌레 같은 위정자는 아랫사람을 괴롭히고 죽일 뿐이므로 처단해야 한다는 생각도 여전했다.
그러나 그는 이안의 가르침에 큰 감명을 받은 후였으므로, 무능한 이종족 위정자에게도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공주를 죽이고 해저 도시의 모든 어인을 불러 모아, 이안의 업적을 칭송하는 시간을 가질 계획을 그는 폐기했다. 이 공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안에게 감사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말이 통하는 걸 보니 그 수준은 아닌 듯했다.
‘그래. 용서와 관용이야말로 신의 가르침이니.’
키이스는 깨달음을 혼자 간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검을 납검하는 소리에 공주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공주의 눈물 젖은 눈을 바라보며 키이스는 자신의 깨달음을 나누어 주었다.
“당신을 살리는 건 오로지 이안 님의 자비심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신의 뜻을 대리하시는 몸. 귀하신 분을 몰라본 어리석음을 벌해서야 그분의 관용에 누가 될 뿐이겠지요. 저도 같은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었으나, 그분은 저를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감동을 곱씹느라 키이스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분의 은혜에 매일 감사하며 살아가십시오. 그분의 가르침을 곱씹을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이 그대들을 찾아갈 것입니다. 이는 제가 당신에게 내리는 벌이 아니라 기회임을 명심하십시오.”
인어 공주는 머리가 멍해졌다. ‘키이스 경’은 교황청의 신성 기사단장이 아니었나? 그가 신을 찬미하는 것은 당연했으나 무언가 내용이 이상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이안 님의 가르침이 뭐지?’
인어 공주는 궁금했다. 하지만 물어볼 분위기가 아니었다. 내관도 찔릴 뻔한 아가미를 붙잡고 심장을 진정시키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귓속말을 할 수도 없었다.
“네…. 네, 그럴게요.”
키이스는 인어 공주를 가늠하듯 내려다보다가 방을 나갔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문을 통해서였다.
공주의 방을 철통같이 지키던 어인 기사가 깜짝 놀라는 소리가 들렸으나, 인어 공주는 그를 진정시키러 나갈 수 없었다.
뒤늦게 눈물이 쏟아졌다.
‘아바마마, 저를 도와주세요.’
세상은 무서운 곳이다.
해저 도시에서도 들릴 정도로 명성 높은 키이스 경도 알고 보니 미친 사람이 아닌가. 그녀의 잘못을 깨우쳐 주려는 듯하더니 ‘이안 교’ 같은 이상한 이단을 믿으라고 포교를 하고 나갔다.
“이안 교를 믿지 않으면 우린 죽게 되는 걸까?”
“적어도 키이스 경 앞에서는 믿는 척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인 내관이 충고했다.
인어 공주는 어깨를 움츠렸다.
“아바마마가 돌아가신 이후로 나, 혼난 거 처음이야….”
“아아, 공주님! 드디어 선왕 폐하의 서거를 인정하셨군요.”
“아…?”
***
‘음.’
간밤의 나들이를 떠올린 키이스는 자신이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방으로 돌아간 후 침대에서 외롭게 떨고 있는 이안을 보고 한 행동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행위도 키이스는 해명할 수 있었다. 그의 마음에는 미혹 한 톨 없었다. 그는 기사도에 따라 약자… 약해진 이안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한 것뿐이다.
‘왜 저렇게 보시는 걸까.’
키이스는 신실한 얼굴로 이안을 마주 봤다. 그는 마음에 걸리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그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정황 증거가 명백했다. 인어 공주가 간밤에 꿈이라도 꿔서 키이스 공포증에 걸렸을 리는 없지 않은가. 이안은 뻔뻔한 키이스를 보며 생각했다.
‘성기사가 거짓말을 해도 되나?’
이 자식 캐릭터성 이상해지고 있는 거 아닌가?
이안은 의혹을 품었으나 공개적으로 제기하기에 이곳은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그는 모르는 척하고 일어난 일의 수습부터 하기로 했다. 해저 도시의 보상은 <인어의 눈물>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이벤트를 통해 인어 공주는 해저 도시의 왕위에 오르고, 이안의 동맹 세력이 된다.
문제는 인어 공주가 그러기로 마음먹기까지 며칠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무슨 병을 받아들이는 다섯 단계를 밟듯이 인어 공주도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를 거쳐 가족들의 죽음이 어쩔 수 없는 일임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안 일행을 풀어 주며 사과와 감사를 함께 전한다. 동시에 그 자리에서 자신이 왕위에 오를 것이며, 해저 도시의 괴물을 물리쳐 준 이안 일행을 영원한 친구로 맞이하겠다고 선언한다.
지금은 키이스의 쓸데없는 개입으로 전 단계를 스킵하고 우울 단계에 갇혀 버린 것 같지만.
“공주님. 저희에게 사죄하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공주님께서는 깊은 슬픔에 빠져, 누구나 품을 만한 원망을 저희에게 품게 되신 것뿐입니다. 저희가 어찌 공주님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오히려 공주님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을 드렸다가, 그 희망을 영원히 깨뜨린 저희가 미우셨겠지요.”
“……?”
도열한 어인들마저 놀란 듯이 이안을 쳐다봤다.
“죄송합니다. 저는 사실 해저 도시의 마물이 공주님의 가족분들을 이미 해쳤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하면서도 일부러 희망을 드렸습니다.”
“예?”
인어 공주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지 않으면 괴물에게 도달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공주님께 죄를 저질렀습니다.”
이안은 침울하게 말했다.
“……!”
인어 공주의 눈이 더더욱 커졌다.
고개를 숙인 이안은 보지 못했다. 그는 인어 공주의 반응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안은 그녀의 모든 대화에 ‘근데 너희 아버지는 돌아가셨고’로 대답할 계획이었다. 인어 공주가 현실을 인정할 때까지.
‘빨리 수용 단계에 도달해라.’
이 공주가 ‘아버님의 빈자리, 제가 채우겠습니다’라고 말하게 만들어야 한다.
퀘스트 보상은 남김없이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때 인어 공주가 눈물을 왈칵 흘렸다.
“요, 용사님…! 아니, 사도님!”
“……?”
‘이건 또 무슨 상황이냐?’
이안은 멈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