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x - 78
#078
“……?!”
키이스가 발끈하는데 뒤에서 마물이 그들을 덮쳐 왔다. 키이스는 이안을 안고 바닥을 굴렀다.
그러나 마물은 아까까지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얼굴의 반이 날아간 탓이다.
키이스는 그것을 눈치채자마자 다시 한번 몸에 <강화>를 걸었다. 과부하가 걸린 몸에 다시 한번 부하가 걸렸으나, 효과는 확실했다.
‘가까운 적에게는 근거리 공격.’
키이스는 몸을 앞으로 내세웠다. 마물이 짧은 앞발이나 무거운 뒷발 대신 본능적으로 엄니를 쓰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모든 마물은 움직이던 방식대로 행동하기 마련이다. 이안이 알려 준 마물의 습성을 키이스는 빠짐없이 기억했다.
캬라쿠스는 자신의 부상도 잊고 얼굴을 들이밀 것이다.
– 크라라라라!
‘와라.’
마물은 그렇게 했다.
키이스의 검이 푸른빛으로 덧씌워졌다. 찬란한 빛을 두른 검이 마물의 허물어진 얼굴을 베고 두개골을 파고들었다. 마물은 저항하고자 했으나, 자신이 달려들던 힘에 못 이겨 도리어 키이스의 검에 자신을 내어 주는 꼴이 되었다.
키이스는 <강화>된 전신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마물의 머리 위로 올라타 전속력으로 등을 지나쳐 내달렸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이 마물의 단단한 두개골과 피부를 가르고 안의 붉은 속살을 드러냈다. 그가 지나간 길로 분수처럼 피가 터졌다. 키이스는 쏟아지는 피의 비를 피하며 마물의 꼬리까지 단번에 베어 버렸다.
콰가가각!
푸슉!
이안은 눈을 크게 뜬 채 그것을 보았다. 그의 흰 얼굴로 핏방울이 점점이 떨어졌다.
‘5성 영웅 최고다.’
키이스는 좀 미쳤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렇게 훌륭한데.
띠링!
[필드 보스: 캬라쿠스를 물리쳤습니다!]
띠링!
[대단한 업적!]
[업적: 낭중지추]
당신의 명성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퍼집니다!
승리를 알리는 알림창이 이안의 눈앞을 가로막았다.
이안은 그것을 치우고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화산으로 걸어갔다. 그의 뒤를 키이스가 따랐다.
‘무리했나.’
키이스는 저주가 다시 작용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피에 젖은 이안이 아름다웠다. 애잔하고 안타까웠다.
키이스는 마음의 거리낌 없이 생각한 그대로 느꼈다. 그가 이안을 탐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음에 심겨진 악마의 소행이므로, 그의 잘못이 아닌 까닭이다.
자신이 이안에게 느끼는 감정은 숭배이고, 이것을 욕망으로 변절하는 것은 악마의 짓이다.
물론 이안은 객관적으로도 아름다웠으나….
이 모든 마음의 티끌은 이안이 정화해 줄 것이므로 그는 걱정할 일이 없었다.
문제가 있는 곳에 해결책이 있나니, 신께서 안배하심이다.
이안은 키이스의 미친 속내를 모르고 캬라쿠스가 봉인되어 있던 항아리를 쥐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찾았다.”
검붉은 구슬이 이안의 손에 잡혀 나왔다. 마왕의 라이프베슬이다.
‘<정화>.’
이안의 손안에서 구슬이 붉은빛을 서서히 잃어 갔다. 희고 깨끗한 빛이 사특한 기운을 몰아내더니 구슬은 모든 마기가 정화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쨍그랑…!
구슬이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빛의 가루가 이안을 휘감고 날아갔다. 이안의 머리카락이 화르륵 흐트러졌다.
“됐다.”
이안은 지쳤다. 이번 전투는 길었다.
숨을 훅 내쉬기 무섭게 다리에 힘이 풀렸다. 눈앞이 까맣게 물들며 머리가 아파 왔다.
키이스가 이안을 부축했다.
“끝나셨습니까?”
“그래.”
‘왜 기특한 짓을 하지.’
이안은 그를 돌아봤다. 키이스는 신실해 보이는 평소의 무표정 그대로였다. 그가 당연한 수순을 이야기하듯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제가 은혜를 나눠 받아도 되겠군요.”
“……?”
이안은 그 수순이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건 플레이어의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알아서 진행되는 이벤트인 모양이었다.
키이스는 경건하게 무릎을 꿇더니 이안의 손에 입을 맞췄다. 그러더니 ‘실례를’ 하고는 이안의 목덜미에 손을 올렸다.
이안이 자신의 목을 방어했다.
“잠깐, 잠깐… 뭐 하는 거야?”
“예? 정화를 받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예. 당신께서 너무도 아름답고 가련하게 느껴집니다. 제 안의 더러운 마음이 작용하는 것을 보아하니, 이번 전투에서 무리를 해 악마가 심어 놓은 싹이 움튼 듯합니다. 이안 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건 무슨 미친 소린가?
이안은 자신이 제정신이 아닌 건지 키이스가 제정신이 아닌 건지 헷갈렸다.
이 대낮에 마물이 죽은 필드에서 옷 좀 벗어 달라는 쪽이 아무래도 미친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이안은 키이스를 봤다. 그의 신실한 표정, 무릎을 꿇은 자세, 경건한 태도가 보였다. 애원하는 듯한 얼굴은 가련하기까지 했다. 모든 게 이상한 요구를 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이 이상한 쪽이란 말인가?
‘상태창!’
이안은 일단 키이스의 상태를 확인해 봤다.
띠링!
[저주 진행도: 57%]
오염도가 오르긴 했다….
‘왜 저렇게까지 올랐지?’
역시 상태 이상 때문인가?
근데 57퍼센트가 위험 수위인가? 저런 미친 소리를 할 만큼 오염이 되어 있는 게 맞나?
‘…맞겠지?’
제정신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거야말로 진짜 문제 아닌가?
이안은 납득했다.
‘그래…. 정화가 필요하구나.’
게다가 정화를 해 주겠다는 건 이안이 먼저 한 말이기도 했다. 조금씩 정화를 받아서 이상한 짓 하지 말라는 이안의 말을 키이스는 잘 따르고 있는 것뿐이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지금 하고 있는 짓이 안 이상한 짓 같지는 않은데….
‘아니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짓이지.’
이안은 생각했다.
그들이 하는 것은 옷 벗고 몸을 부비적거리면서 입 맞추는 행위가 아니다. 그냥 정화일 뿐이지 않은가? 그게 뭐가 이상하단 말인가?
키이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그가 성실한 태도로 말했다.
“이안 님. 팔을 벌려 주십시오. 옷을 벗기기 힘이 듭니다. 이안 님은 옷을 찢는 걸 싫어하시지 않습니까?”
“어….”
‘이게 정말 이상한 짓이 아닌가?’
이안은 혼란스러웠다.
그는 일단 팔을 벌렸다. 키이스가 그의 궁수용 로브를 벗기고 상의를 또 하나 벗겼다. 그러는 동안 팔을 빼 주고 있으려니 이안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인지 몸이 움츠러든다. 추워서는 아닌 듯했다. 그냥, 뭔가가… 뭔가….
키이스는 고운 재가 깔린 바닥 위에 이안의 궁수용 로브를 깔고, 자신의 로브를 입힌 이안을 그 위에 눕혔다.
“내가… 꼭 누워야 될까?”
이안은 최대한 중립적인 언어를 사용해 봤다. 키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정화를 받다 보니 이안 님께서 불편해하시는 듯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눕는 자세가 되시기에, 아예 처음부터 이안 님께서 편하실 수 있도록 누워서 시작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 판단력이 좋네.”
뭐가 좋단 말인가?
이안은 자신이 뭐라고 떠드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니. 얼뜨게 굴지 말자.’
이안은 담대하게 마음을 먹었다. 자신이 결정한 일에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좀스럽지 않은가.
하겠다고 해 놓고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한다고 하면 하는 것이다.
이안은 자신이 결정한 일에 사족을 붙이는 걸 싫어했다. 그건 변명이니까.
키이스가 이안의 위로 올라탔다. 경갑옷을 벗었다고는 하나, 근육질 남자의 무게는 무거웠다. 그가 고개를 기울인 채 다가오는 게 보였다. 이안은 자신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키이스의 입술이 아랫입술을 빨았다. 자신의 신체 일부가 다른 사람의 따듯한 입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부드럽고 신기했다. 키이스는 맛이라도 느끼려는 것처럼 신중하게 이안의 입술을 핥았다.
‘피 맛밖에 안 나지 않나.’
“응….”
이안의 목소리가 안에서 울렸다.
역시 이건 느낌이 이상하다. 자세가 너무 본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키이스의 혀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그게 또 천천히 이안의 입안을 탐색했다.
간지러웠다. 입안이 아니라, 속이 근지럽고 답답해서 눈꺼풀이 자꾸만 떨렸다. 뭔가가 깃털로 가슴을 건드리는 느낌이 든다.
‘아니, 좀…!’
이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키이스의 혀에 자신의 것을 얽었다.
“……!”
키이스가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이안은 스킬을 사용했다.
‘<정화>!’
띠링!
[저주 진행도: 53%]
이렇게 팍팍, 좀 해 대면 빨리 끝날 게 아닌가? 그런데 뭘 미적미적….
이안은 인상을 쓴 채 눈으로만 키이스를 힐난했다.
그런데 키이스가 고개를 틀었다. 그러더니 이안의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왔다.
“으음…?”
이안은 눈을 크게 떴다.
그에게 잡아먹히는 듯했다. 턱이 꽉 잡힌 채, 모든 것이 핥아졌다. 샘이란 샘은 모두 빨려서, 이안은 입만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술렁거렸다.
‘뭐야, 이게 뭐지?’
이안은 숨을 쉬는 것도 잊고 멍하니 있었다. 이렇게 남과 혀를 문대는 행위가 기분이 좋은 거였나? 정신이 몽롱했다.
키이스의 손이 로브 속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이 차가웠다. 열이 오른 몸을 적당히 식혀 줘서 간지럽고 또 자극적이었다.
그의 손이 가슴의 피부를 훑었다. 도톰하게 솟은 곳을 누르고 마른 허리를 따라 조심조심 만졌다.
“잠깐, 잠깐…!”
이안은 정신이 들었다.
“예. 정화는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습니까?”
키이스가 이안의 귓볼에 입술을 붙인 채 물었다. 그리고 마른 입술을 귀밑의 여린 살에 문질렀다.
움찔…!
이안의 발가락이 움츠러들었다.
‘아, 정화.’
정화 중이었지.
멍청히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안은 <정화>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키이스의 입술이 계속 여린 살을 문대고 혀로 핥았다.
움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