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 8
8화
“……응? 그럼 본부 오고 싶었어요?”
“예.”
“진짜? 끌려와서가 아니라 본인 의지로?”
“예. 가고 싶습니다.”
아……. 이것 또한 소람이 그의 발령을 세 번이나 겪고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1급이 되자마자 자연스레 본부로 불려 온 줄로만 알았지, 본인도 강하게 원했을 줄은 몰랐다. 욕심이라곤 세상에 하나도 없어 보이는 이런 얼굴로.
“그런데 왜 아까 지구대장님이 막 뭐라 할 땐 아무 말도 안 했어요?”
“타이밍이 안 좋았습니다.”
한 시간 넘게 운전해도 흐트러지지 않은 곧은 자세처럼, 그가 고저라고는 전혀 없는 무감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까 같은 상황에 면전에서 서울로 가겠다고 하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더 화내셨을 분입니다.”
“고집이 있으신 분 같긴 했어요.”
“술 한잔하시면 오히려 가라고 떠미셨을 겁니다. 조만간 둘이 있을 때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오…….”
뚱한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사람 파악을 다 하고 있었네. 소람은 그런 생각을 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제가 괜히 방해한 거네요.”
“아닙니다. 덕분에 대장님이 마음을 돌리신 것 같습니다.”
“……그래요. 본의는 아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충동적으로 군천을 가긴 했지만, 결국 이번에도 본부의 한 팀에서부터 시작될 예정인 모양이다.
“서울에서 활동하면 화면에 잡힐 일 진짜 많아요. 한태운 씨는 잘생겨서 인기 많겠네요.”
“…….”
이번엔 대답이 없었다. 소람이 앞으로 그에겐 예스, 노로 대답이 나올 수 있는 질문만 하자고 다짐할 때였다.
“진소람 씨가 훨씬 더 잘생겼습니다.”
“예? 어, 네?”
“…….”
……한태운이 이런 말도 할 줄 알았네. 그는 쑥스러운지 옆을 흘끔이던 시선도 멈추고 앞만 보았다. 곧 소람은 흥미로운 웃음을 지으며 운전석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저는 기생오라비 소리 들으면서 호불호 갈리는 얼굴이고, 한태운 씨는 시대 안 가리는 미남이잖아요.”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생겼단 말 안 들어봤어요?”
“딱히요.”
“학교 다닐 때 고백 꽤 받았을 텐데?”
“없었습니다.”
소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무뚝뚝함이 장벽을 쌓았거나 상대가 고백을 했는데도 한태운이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 분명했다.
솔직히 한태운이 인기가 없을 수가 없었다. 지난 생에서도 그가 1급 이능사로 소개되자마자 얼마나 난리가 났었는데. 그의 얼굴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한태운 씨 강남 제일 큰 산부인과에서 태어났을 것처럼 생겼어요.”
“무슨 의밉니까.”
“돈 많고 일 잘하는데 까칠하고 성격 못된…… 옛날에 유행하던 드라마 재벌 남자 주인공 같아요.”
“…….”
그리고 그런 재벌들은 사람 말에 거의 대꾸를 않지. 지금 한태운처럼 말이다.
같은 의미에서 군천 군청의 낡은 사무실 안에 들어 있던 한태운은 몹시 이질적이었다. 무뚝뚝함을 오만함으로 오해받을 만큼 날카롭게 생긴 미남과 낡은 가죽 소파, 그리고 구식 히터는 영 조합이 어울리지 않았다.
곧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다는 알람이 들려왔다.
“여기서 그냥 쭉 가면 돼요. 등록 안 된 차는 지하로 못 내려가요.”
지하로 가는 길은 막혀 있지만, 종종 외부인사가 오가는 만큼 지상 주차장은 열려 있었다. 빈자리에 차를 세우고, 태운은 소람과 함께 우뚝 솟은 건물 앞에 섰다.
번쩍거리는 유리창이 내부가 잘 보이지 않도록 빛을 반사했다. 입구의 머릿돌에는 정자로 이곳의 명칭이 적혀 있었다.
균열현상관리본부.
균열 현상이 10년 넘게 지속되며 그 어떤 정부 조직보다 강력한 기관이 된 곳. 전 세계적으로 균열 현상에 골머리를 앓는 지금, 외부의 전쟁보다도 내부의 균열 해결이 나라를 평온하게 지키기 위한 주요 요소가 되었다.
“아, 맞다.”
소람이 손가락을 딱 튕기며 태운을 돌아봤다.
“한태운 씨, 능이백숙 좋아해요?”
“싫어하진 않습니다.”
“잘됐다. 역시 견학하면 역시 식당이지. 밥 먹고 가요.”
본부 건물 내부로 들어온 소람은 인포 데스크로 향했다. 태운은 소람과 함께 걸으며 무뚝뚝한 시선으로 군천 군청이 통째로 들어갈 것 같은 로비를 훑었다. 이곳에 출입하는 이들에게도 소람은 신기한 사람인지 여기저기서 그를 돌아봤다.
시선이 몰린 소람이 다가오자, 데스크 직원이 얼떨떨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렘 반, 긴장 반이 섞인 표정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진 수석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임시 출입증 하나만 발급해 주세요.”
“네. 어, 이건 형식적인 질문인데, 어떤 용도로 쓰시는지…….”
“제 거 잃어버렸어요.”
“예? 진 수석님 출입증이요?”
이 건물의 숨겨진 층을 포함,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수석’의 출입증이 분실 중이라면 큰일 아닌가……. 하는 혼란스러운 표정의 직원은 옆자리 직원과 뭐라 말을 교환했다. 잠시만 기다려 달란 말을 남기고 데스크 뒤의 문으로 들어간 직원이 곧 하얀 카드를 가지고 나왔다.
“여기서 발급해 드릴 수 있는 임시 출입증으론 최대 출입 가능 층수가 13층까지밖에 안 되세요. 사무실에서 별도로 지원팀에 출입증 재발급 신청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충분해요. 고맙습니다.”
사실 5층 이상 출입이 가능한 임시 출입증을 발급하려면 꼼꼼한 신원 확인이 필요한데 소람의 경우는 얼굴로 이미 모든 신원이 증명된 거나 다름없었다.
소람은 태운을 이끌고 여섯 대의 엘리베이터가 세 대씩 마주 보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엔 세 명의 직원이 가장 빨리 도착하는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도 가까이 다가오는 소람을 보곤 어라? 하는 얼굴이었다. 소람은 맨 앞의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죄송한데, 엘리베이터 먼저 쓸 수 있을까요?”
“네. 어, 어. 무슨 일 있으신가 봐요!”
“현장 파견국 기밀이에요.”
“아……. 얼른 쓰세요. 파이팅!”
“고마워요.”
소람과 태운 가장 먼저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그는 주머니에서 꺼낸 자신의 출입증을 패드에 찍은 뒤, 대충 위쪽 아무 층을 눌렀다.
“한태운 씨도 앞으로 새치기하고 싶을 땐 파견국 일이라고 하면 돼요.”
“…….”
“견학 온 신규 이능사에게 주는 꿀팁이에요. 이건 가져가고.”
소람은 태운에게 임시 출입증을 넘겼다. 순간적으로 스친 손은 같은 남자인데도 소람의 손보다 훨씬 컸다. 다만 소람의 손은 일찍이 이능사 활동을 시작한 걸 증명하듯 흰 손등과 손가락이 자잘한 흉터로 가득했다.
“그래도 견학을 온 거니까 소개하자면.”
소람이 카드 끝으로 1부터 7까지의 숫자를 훑었다.
“여기 7층까진 개방 공간이라고 불러요. 일반인들이 견학 가능한 범위요. 식당, 카페, 기념품점도 있고, 외부 인사 회의실, 전시실, 이능력 체험관… 뭐 이런 거. 식당가 외엔 갈 일 없을 거예요.”
태운은 별 반응이 없었지만 소람이 가리킨 패드를 빤히 보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에 입술만 작게 달싹였다.
“그리고 8층에서 15층이 일반 사무실이에요. 행정, 재경, 대외협력부서 같은 사무직 분들이 12층까지 쓰고, 한태운 씨가 소속될 현장 파견국이 13층, 정찰국이 14층, 그리고 15층은 국장님들 사무실이요. 여기서 하나 중요한 게.”
소람이 카드 끝으로 14층을 찔렀다.
“정찰국 새끼들이랑 친하게 지내지 마요.”
“…….”
“아주 나쁜 놈들이니까!”
허리에 손을 얹은 그를 쓱 돌아본 태운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
보통은 왜냐고 물을 법한 말이건만, 태운은 차에서와 마찬가지로 몹시 짧게 대답했다. 억지 주장을 펼친 소람이 오히려 머쓱해질 만큼.
“이유는 안 물어봐요?”
“말씀해 주실 겁니까?”
“……아니요. 그런데 내가 한태운 씨 골탕 먹이려는 걸 수도 있잖아요.”
“골탕 먹이시는 겁니까?”
“그걸 나한테 물어요? 난 나 믿으라고 하지.”
소람의 어이없는 웃음 위로 태운의 시선이 닿았다. 그의 눈동자는 색이 짙었다. 까맣고 숯 많은 눈썹과 잘 어울리게.
“그럼 이번엔 속을 수밖에 없겠죠. 친하게 지내지 않겠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목표 층에 다다르기 전, 8층에서 잠시 멈춰 섰다. 거기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어? 하며 멈칫하자 소람이 “미안한데 비상 회의라서요.”라는 거짓말과 함께 문을 닫아 버렸다. 엘리베이터엔 여전히 두 사람만이 타고 있었다.
“이 위론 연구실, 자료 보관소, 데이터 센터… 그런 곳들이에요. 그리고 21층부턴 이능사 기숙사. 시설이 나쁘지 않다고는 생각하는데, 직장에서 먹고 자기까지 하긴 싫으면 밖에 집 구해도 상관은 없어요. 그래도 긴급 출동이나 부상, 비상 대기 같은 일로 시간대 꼬이는 일이 많아서 방 하나는 무조건 배정받게 될 거고요. 마지막으로.”
소람이 자신의 출입증 아랫부분을 꾹 밀어 눌렀다. 그러자 얇은 틈새가 벌어지더니, 납작한 조각도 같은 것이 비죽 튀어나왔다.
자세히 보니 그 위엔 어떤 칩 같은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소람은 그것을 엘리베이터 층수 숫자판 아래 열쇠 구멍에 끼웠다. 모양이 맞지 않아 보였는데, 살짝 밀어 넣으니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러자 기계음이 몇 차례 지나가고, 숨겨져 있던 숫자판 아랫부분이 열렸다.
“요새 위성사진으론 못 찍을 게 없어서, 위층에 있는 건 그나마 들켜도 심각해지진 않는 범위고, 절대 보이면 안 될 것들은 전부 지하에 있어요.”
열린 곳에는 지하 1층부터 15층까지 빼곡하게 늘어선 다른 숫자판이 나타났다.
“기밀 연구나 1, 2급 상위 이능사 능력치 측정 및 훈련은 거의 여기 지하에서 이뤄져요.”
“…….”
“여기서부턴 보안 등급이 상상 초월로 올라가고요. 같은 파견국 이능사라도 직급에 따라 갈 수 있는 데가 다를 거예요. 여긴 한태운 씨 정식으로 배정받으면 직접 돌아다니며 설명하는 게 낫겠네요. 이제 밥 먹으러 갑…….”
삐릭, 삐릭, 삐릭. 소람의 말을 끊고 군청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알람 소리가 들렸다. 출처는 이번에도 소람의 손목에 채워진 밴드였다.
“그리고 또 하나. 한태운 씨 여기 오면 이 소리도 많이 듣게 될 거고요. 네, 진소람입니다.”
소람은 일부러 얼굴과 손목을 멀찍이 떨어뜨렸다.
―얀마! 너 본부 왔다며. 어디야?
“저 엘리베이터요.”
―하아, 국장실로 빨리 와라. 얼마나 사고를 쳤나 알아야 수습하지.
“지금요? 좀 곤란한데요.”
―왜!
“옆에 손님 데려와서요.”
―그새 또 누굴 데려왔어? 빨리 돌려보내고 와.
“그래도 돼요? 옆에 한태운 씨인데. 한태운 씨, 부국장님이 도로 가래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