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 7
7화
소람이 잠시 말문이 막힌 사이 이재현이 외쳤다.
“태운아! 아이고, 대장님! 결국 좋은 곳 가려는 애 발목을 붙잡아 고꾸라뜨리네. 당연히 본부 가야지 그게 무슨 말이야!”
“괜찮지는 않을 거예요. 당연하지만.”
소람의 대답에 세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본부로서는 1급 각성자를 놓아줄 수가 없어요. 한태운 씨가 군천군청 소속이어서 그나마 공문과 유예기간이 내려온 거지, 일반 각성자였다면 당장 다음 날 서울로 불려왔어요. 지금은 회유지만, 정말로 안 가겠다 버티면 얼마 뒤에는 언론을 들쑤셔서라도 협박을 할 거예요. ‘26세의 젊은 1급 이능사, 균열의 격전지보다 뒤로 물러나 후방에 있는 걸 선택. 수도권 이천만 시민의 목숨은 뒤로하나. 새로운 히어로를 족쇄처럼 옭아매는 이기적인 군천군.’”
“…….”
“대충 이런 식으로요. 언론 대응팀은 저도 무서워요.”
“그게 무슨 선택지가 있는 거야!”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을 듣고 얼굴이 시뻘게진 노문영이 큰소리로 외쳤다. 말만 번지르르하더니 결국 사람 끌고 가려는 생각은 똑같냐는 힐난의 시선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요, 욕 좀 먹는다고 사람 안 죽어요. 그렇게 시간 지나다 보면 사람들 다 그러려니 하게 되고요. ……어.”
삐릭― 삐릭―
소람이 우렁차게 울기 시작한 손목 밴드를 들어 올렸다. 카랑카랑한 음역대의 사이렌은 아무리 시끄러운 곳에서도 못 들으려야 못 들을 수가 없는 소리였다. 잠시만요. 소람은 세 사람 앞에서 작은 화면 옆 버튼을 눌렀다.
“진소람입니다.”
―진소람 이놈아, 너 지금 어디야? 그새 또 어디로 사라졌어?
“아, 부국장님.”
부국장? 소람이 상대를 부른 호칭과 목소리를 들은 이 자리의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60대 남성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누가 모를까. 한국에서 가장 요란하게 각성한 케이스이자, 각성 시기엔 정해진 나이가 없음을 몸소 증명한 사람이었다.
대법원장으로 임명된 다음 해에 61세의 나이로 각성을 한 이능사. 바로 전날까지 단정하고 기품있는 판사의 모습을 보이다가, 각성한 다음 날 퇴임식 겸 기자회견장에서 껄렁한 자세로 앉아 ‘에이 시벌,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게 이렇게 되네…….’라는 희대의 인터뷰를 남긴 인물. 바로 권중오였다.
과연 이능사 역할을 잘할까 했더니만, 몇 년 뒤 박재선 국장을 보좌하는 부국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무슨 한이라도 맺힌 사람처럼 그 위치에서 정치권 인사들을 말로 실컷 두들겨 패 대며 균본부에게 권력을 가져다줬다.
“저 지금 군천에 있어요.”
―……군천? 네가 왜 거기 있어?
“어쩌죠. 새로 올 이능사랑 사이좋게 지내래서 미리 인사하러 왔는데 분위기가 별로 안 좋네요? 여기서 한태운 씨 절대 안 보낼 것 같아요. 망했어요. 제가 재 뿌렸어요.”
―이 망나니 녀석아! 너, 너! 내가 너 사고 치지 말라 한 지 하루도 안 지났다! 당장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얌전히 나와!
“으응, 저 낯가려서 초면엔 두 배로 싸가지 없어지는 거 알면서.”
―저 미친놈이! 어이구, 내가 저놈 때문에 제 명에 못 살지, 진짜……!
“아닌데. 이 기력이면 백 살까지 장수하시겠어요.”
―진소……!
쩌렁쩌렁 고함이 시작되기 전, 소람은 삑 소리와 함께 호출기를 껐다.
“봐요. 안 죽어요.”
“허.”
“아예 선택지조차 없다고 여기시는 것 같으니, 알고라도 있으세요. 이런 방법도 있어요.”
“…….”
“부국장님이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나오라셨으니 저는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고, 안녕히 계세요.”
소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말로 두 손을 모으고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올 때와는 달리 정상적으로 출입문을 열고 나갔다.
그 여파가 다 가시기까진 시간이 꽤나 걸렸다.
“……방금 뭐가 지나간 건지…….”
이재현은 닫힌 나무문을 보며 황당하게 중얼거렸다. 말 많던 사람이 빠져나가자 침묵이 더 휑하게 느껴졌다.
바닥을 내려다보던 노문영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태운아,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던 것도 같,”
“아, 저기 죄송한데요.”
그 순간 문이 다시 벌컥 열렸다. 소람이 한 손을 들고 몸을 내밀었다.
“여기 서울 가는 광역 버스 어디서 타나요?”
“……날아가면 되잖습니까. 아까 온 것처럼.”
“두 번 하면 얼어 죽을 것 같아요. 제가 동사해서 1급 자리 하나 비면 한태운 씨는 선택지도 없이 본부 강제 이송이에요.”
“버스…… 오전 건 이미 갔고, 다음 건 다섯 시간 뒤에나 있을 텐데요.”
“엥 진짜요? 택시는 어디서 잡는지…….”
“…….”
“……그럼 다섯 시간 정도 들어가 있을 수 있는 대실 가능 호텔, 아니 숙박 시설…….”
“…….”
군천에 도착한 뒤 처음으로 소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여기까지 하늘을 날아온 그가 가장 잘 알 것이다. 이 주변은 논과 밭, 그리고 3층이 넘지 않는 야트막한 공장들만 듬성듬성 있는 허허벌판이란 걸. 광역 버스는커녕 마을버스를 보기도 힘들 것이다.
“태운아.”
“예.”
“이 시간에 서울까지 차로 세 시간이면 갈 거다. 바래다드리고 와. ……그리고 간 김에, 새로 옮길 직장에서 인사도 좀 하고 와라. 견학 가능하면 둘러보고 와도 좋고. 내가 지구대에 데려다 쓴 걸로 해 놓을 테니까 바로 퇴근해. 이재현, 그래도 되지?”
“네, 네. 되죠! 와 대장님, 마음 바꾸셨어요?”
노문영이 소람을 흘끗 보고는 입가를 까슬하게 쓸어내렸다.
“협박인지 뭔지 모를 것 때문이 아니라, 태운이 저놈 여기 시골 청사에 계속 남아 있는 꼴을 생각해 보니까 그제야 정신이 들더라. 뭐 해. 남은 사람들은 담배나 한 대 피우러 가자. 진소람 수석, 그럼 살펴 가요.”
“아, 네…….”
노문영은 태운의 어깨를 툭툭 치고 나갔다. 방 안엔 소람과 태운 두 사람만이 남았다.
태운은 뺨을 긁적이는 소람에게 다가왔다. 창을 등지고 문 앞에 선 그 때문에 소람의 앞에 약간 그림자가 졌다. 그가 소람보다 키가 더 큰 탓도 있었다.
“가시죠.”
“어……, 네에. 그럼 신세 좀 질까요.”
“예.”
* * *
은색 준중형 자동차가 오후 시간의 한산한 고속도로를 달렸다. 히터에서 나는 다소 퀴퀴하고 묵은 냄새는 백미러 옆에 매달린 포푸리 향과 오묘하게 뒤섞였다. 차량에 탑재된 내비게이션이 없어 대신 태운의 휴대폰으로 켜 둔 지도 어플이 간간이 알림을 주었다.
“이거… 한태운 씨 차예요?”
“아뇨. 군천 군청에서 쓰는 찹니다.”
아, 공용 차구나. 어쩐지 태운의 성격과 맞지 않는 부분이 더러 보였다. 앙증맞은 하트가 그려진 주차 번호판이라든가, 뒷좌석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서류 봉투들이라든가…….
지도가 가리키는 대로 제법 능숙하게 핸들을 몰던 태운이 말했다.
“피곤하면 주무셔도 됩니다.”
“저요? 피곤해 보여요?”
“오늘 이른 시간에 출동 다녀오셨잖습니까.”
“어… 맞는데, 어떻게 알았어요?”
“기사로 봤습니다.”
“아하.”
하긴, 구경꾼이 그렇게 많았으니 화제가 되었을 것이고, 기사도 날 만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소람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한태운과 나쁜 사이로 지내는 건 지난 생에 충분히 해 봤다. 별 효과도 없던 피곤한 짓을 또 하기는 귀찮았다.
“옆에서 운전하는데 잘 정도로 피곤한 건 아니에요.”
일단은 적당히 지내볼까.
보통 조수석에 앉는 목적은 옆 사람에게 말을 걸어 주는 등 운전자를 심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소람도 처음엔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태운 씨는 군천에서 지금까지 계속 살았어요?”
“대학 입학해 서울에서 1년 기숙사 생활했고, 군대 2년을 빼면 그랬습니다.”
“아, 억울하겠다. 이능사들은 군복무 대체 가능한데.”
“음.”
태운은 아주 짧게 대답인지 아닌지 모를 것을 했고, 차 안에는 또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어쩐지 바위랑 이야기하는 것 같은 이 기분……은 소람의 머릿속 묵은 기억들도 새록새록 떠올리게 했다.
그래, 한태운은 이런 인간이었다. 무뚝뚝하고, 우직하고, 말수도 적고. 바로 직전의 생에 그와 일부러 거리를 두고 지내느라 잠시 잊고 있었다.
태운은 꼭 필요한 말은 한다. 하지만 ‘꼭 필요한 말’의 반대가 ‘쓸데없는 말’인 건 아니다. 그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언어적 친교 표현과 의사 전달이 있는데, 한태운은 그게 아예 부재되어 있었다.
그래서 세 번째는 그렇다 치더라도 첫 번째, 두 번째 삶도 그리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다. 제법 오래 함께 지낸 뒤에도 그를 보며 가슴을 쿵쿵 친 적도 적지 않았다. 도통 말을 하질 않아서 그가 3급에서 재각성했단 사실도, 군천군과의 갈등이 있었단 사실도 네 번째 생에서야 처음 알게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런 사람이 왜 자꾸 날 구하는 거야?
소람은 팔짱을 끼고 옆 사람을 뜯어 살피듯 보았다. 물론 지금의 한태운에게 물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한태운 씨는 나한테 궁금한 거 없어요?”
그는 질문을 받고 잠시의 틈 뒤에 말했다.
“군천에 오신 건, 제가 본부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해 주러 오신 겁니까?”
“본부 안 와도 괜찮은 건 아니라니까요. 거긴 항상 인력 부족이니까. 하지만 대장님이랑 한태운 씨 보니까 괜찮지 않은 것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단 건 말해 주고 싶더라고요.”
“그렇습니까.”
“지금도 생각은 같아요. 오기 싫으면 거절해요.”
태운이 짧게 시선을 돌려 옆자리를 보았다.
“본부에 오면 여러 좋은 점도 있긴 한데, 일단 균열의 강도며 빈도가 훨씬 높아요. 인구 밀집도 높은 곳에 균열이 더 자주 발생한단 건 전 세계적인 통계로도 나왔고요. 균열 제때 못 막아 터지는 던전 횟수도 주에 세 번은 돼요.”
“그렇습니까.”
“잠깐이야 시끄럽겠지만 한태운 씨 뒤에 새로운 1급은 또 나타날 거고, 관심도 점점 수그러들 거예요. 이능사 배치 불균형에 대한 이야기는 꾸준히 나온 주제니 한태운 씨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도 생겨날 거고요. 그러니까…….”
“진 수석님.”
‘진 수석, 님. 당신은…….’
소람은 자신을 부르는 태운의 목소리에 흠칫 숨을 들이마셨다. 이와 같은 목소리, 그리고 부름이 머릿속에 왈칵 떠올랐다. 핏물이 엉겨 붙은 목소리로 말하던…….
“그, 렇게 부르지 마요.”
다행히 운전 중이던 태운은 순간 싸늘해진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다.
“동갑끼리 존대하는 건 좀, 어색하잖아요. 그냥 이름 부르세요. 진소람.”
“그럼 진소람 씨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네, 훨씬 편하네요.”
그건 지난 세 번의 생애에는 없던 호칭이었다. 차라리 이게 나았다.
“진소람 씨. 전 본부 안 가고 싶다는 말 한 적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