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 6
6화
가시방석 위에서 눈치를 보던 이재현은 노문영의 날 선 목소리를 듣고 “그렇긴 해요.”라며 비위를 맞췄다.
“이쪽엔 대신해 2급 이능사 하나를 보낸다곤 하는데, 찾아보니까 2급 열 명이 1급 한 명을 못 이긴다더라고요. 흠, 태운이 너도 어이가 없지 않냐. 근데 가긴 가야지 어쩌겠냐만…….”
태운은 자신 앞에 놓인 녹차 티백 끈에서 시선을 들어 올렸다.
“저는 재각성을 한 경우니 그런 계산에 해당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뒤로 오신다는 분이 실력이 더 좋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것도 문제다. 서울 올라갔더니만 막 너한테 3급이었던 게 어디서 까부냐면서 시비 걸면 어쩌냐. 시골에서 왔다고 따돌리고 텃세 부리고.”
“설마요.”
덤덤하게 대답하는 태운은, 사실 누가 얠 괴롭힐 수 있을까 싶은 모습이긴 했다. 190이 넘는 키가 그랬고, 저 심각할 정도로 무뚝뚝한 성격이 그랬다.
‘그러니 솔직하게는 서울로 올라가면 좋을 텐데…….’
이재현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한태운은 이 오래된 청사 건물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본래대로라면 막 대학을 졸업했을 스물여섯이란 나이가 그랬고, 탄탄한 앞날이 보장된 귀한 1급 이능사란 점이 그랬다. 인구수가 3만이 안 되는 농촌에 머무르라 주장하기엔 미안한 사실들이었다.
태운은 여전히 서울 본부로의 발령에 대해 어떤 심정인지 예측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게 잔뜩 분이 오른 노문영의 눈에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란 건 분명했다.
“상경한다니까 좋냐? 어려서부터 먹이고, 업고 뛰어다닌 녀석들도 다 하나씩 떠나더니 결국 태운이 너까지 아주 가네. 본부로 가면 그거지? 거 서울 한가운데에 있는 27층짜리 건물에 다니면서 티브이에 나오고, 어? 시커멓게 큰 균열 없애라고 끌려 나오고 말이야.”
“그만하세요. 대장님. 어차피 결정된 거 올라가서도 잘하라고 하는 게 낫죠.”
“그래, 고향 떠나서 잘살아라. 잘살아!”
이번에도 태운은 대답이 없었다. 아니, 그런데 어른이 이 정도로 섭섭함을 토로하면 뭐라 위로의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괘씸해하며 본 태운은 심지어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한태운, 너 떠날 날 얼마 안 남았다고 말이야…….”
“저.”
태운이 조금 전까지 자기가 보고 있던 방향을 가리켰다. 창가 쪽이었다.
“손님 오신 것 같습니다.”
“갑자기 뭔 헛소리…… 으아악!”
“뭐, 뭐야! 저 인간!”
세 사람이 있는 사무실은 3층이다. 본래라면 창문 밖으로 사람이 보여선 안 될 높이였다. 그러나 그곳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어떤 남자가 둥둥 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는 양팔 너비만큼 커다란 종이비행기 위에 서 있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발견했음을 안 남자가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외쳤다.
문, 좀, 열, 어, 줘, 요.
그리고 두 손을 비빈 뒤 처량한 표정을 지으며 잠금쇠를 가리켰다. 한태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저, 저. 종이비행기 타고 다니는 거. 그, 맞지? 티비에 자주 나오는 1급 이능사인가 뭔가.”
“헉, 맞네요! 그, 그, 뭐냐, 진소람!”
덜컹.
소리와 함께 태운이 창문을 안으로 당겼다. 2월 중순의 시린 바람이 방 안으로 들이쳤다. 창문 앞에 서서 그 바람을 그대로 맞은 태운의 짧은 앞머리가 흔들렸다.
소람과 태운의 시선이 마주쳤다.
“아, 한태운 씨?”
태운의 얼굴에 미미한 놀람이 번졌다.
“네.”
“일단은 처음 뵙네요. 반가워요.”
인사를 건네던 소람의 눈이 순간 아픈 것처럼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건 곧 웃음으로 감춰졌다.
“좀 들어가도 될까요? 밖에 너무 추워요.”
소람이 두 팔을 감싸 문지르는 것으로 진정성을 어필했다. 태운은 옆으로 비켜서 자리를 만들었다.
성인 남자에게 창문 한 칸은 드나들기 넉넉한 사이즈가 아니었다. 소람은 무릎과 허리를 잔뜩 굽혀 그 사이를 통과했다. 그리고 창틀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소람은 자신을 바라보는 태운을 지나쳐 아직도 입을 닫지 못한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진소람입니다.”
균열현상관리본부 소속 1급. 수석 이능사 진소람. 대한민국 대다수의 국민이 그의 얼굴과 직위를 알 것이다.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한 번은 뉴스에서든 광고에서든 나타나는, 그야말로 슈퍼스타니까.
“……아, 네. 노문영입니다.”
그래서 지금 ‘너 나 알지?’라는 식으로 이름만 말한 거지? 노문영은 소람의 태도를 삐뚜름한 눈으로 평가했다. 그러므로 그도 유치하지만 직급 소개 다 잘라먹고 이름만 툭 던졌다. 어차피 누가 봐도 나이는 이쪽이 많다.
“거, 왜 정문으로 들어오질 않고 창문으로 옵니까.”
“여기 오는 길 찾다 보니 역시 날아서 가는 게 제일 빨라서요. 근데 이렇게까지 추울 줄은 몰랐네. 휴지 한 장 써도 되죠?”
소람은 티슈를 뽑아 코를 흥 풀었다.
“힝, 코 아파.”
중얼거리는 소람을 보며 노문영은 혀를 찼다.
밖은 아직 영하인 겨울이다. 일반인이 서울에서부터 여기까지 코트 차림으로 날아왔다면 잘 냉동된 시체로 도착했을 날씨였다. 그나마 1급도 사람은 사람인지 소람의 코며 뺨이며 손끝이 다 붉었다.
어느새 테이블로 돌아온 한태운은 가운데에 놓인 낡은 자주색 난로의 온도를 높였다. 그리고 난로의 방향을 아직도 풀풀 냉기가 가시지 않은 사람을 향해 돌려 주었다. 다시 고개를 들자 그를 빤히 보고 있던 소람과 눈이 마주쳤다.
“나 따뜻하라고 해 준 거예요?”
“예.”
“말도 안 했는데 도와주네. 고마워요.”
고마우면 고마운 거지, 고맙다고 하면서도 말이 왜 저래. 소람의 행동이 영 못마땅한 노문영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래서 진소람 수석.”
“네?”
“태운이 내놓으라고 온 겁니까?”
“대장님, 위에서 온 분한테 또 왜 이러실까. 저, 수석님이 이해하세요. 대장님이 이 지역에 애착이 깊어서…….”
“왜, 이 정도 말도 못 하는 건 아니잖아. 그래요. 서울에 사람 많고, 균열 많이 터지는 거 알겠습니다. 그런데 번쩍 발현한 사람 채 가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2년이나 일한 사람 의사도 안 묻고 강제로 데려가는 건 말도 안 되죠. 나고 자라기를 다 여기서 한 녀석을.”
“아, 그렇군요.”
“여기 태운이 녀석 가족들이며 친구들, 일가친척 다 있습니다. 누가 그런 곳을 안 지키고 엄한 다른 곳에서 목숨 걸고 싸우고 싶겠습니까?”
그가 쏘아붙인 말은 이미 본부에 전달한 적 있는 내용이었다. 돌아온 답변은 ‘그렇게 활동하는 이능사나 군인이 한둘인 줄 아느냐. 우리는 공공 기관으로서 다수를 생각한다.’였다.
노문영도 사실은 당연히 태운을 보내야 하는 걸 알고 있었다. 공익을 위해서도, 그리고 태운을 위해서도. 어차피 결정된 일이라 더욱 오기를 부리고 화풀이를 한 면도 없잖아 있었다.
면전에서 다짜고짜 쏘아 붙여진 소람은 태운을 한 번 쓱 보고는 대답했다.
“그쪽 말씀이 맞네요. 본부로 오기 싫으면 오지 마세요.”
“예, 예. 어쩔 수 없는 거 아는데, 이렇게 찾아오기까지 하면서 하면 사람 기분이…… 뭐요?”
“죽어도 오기 싫다는 사람 강제로 불러들이면 안 되죠. 본부에서 영장 보내듯 인사 발령을 냈나 본데 정 싫으면 그냥 버티세요. 시대가 어느 땐데. 한태운 씨가 사인하기 전까진 강제로 본부에서 일 못 시켜요.”
“……아니…….”
“한태운 씨 서울로 옮기면 내 팀으로 들어올 거예요. 원한다면 나도 같이 저 사람이랑 일 못 한다고 드러누워 줄게요. 그럼 효과가 두 배로 좋겠죠.”
이런 반응을 보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노문영과 이재현은 대답 없이 멍하니 입만 벌렸다. 노문영의 얼굴엔 얼핏 ‘이게 아닌데…….’ 하는 당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다만 태운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말없이 소람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회귀를 반복하는 동안 여러 번 본 익숙한 눈빛이었다.
소람이 알고 있는 한태운의 성격은 첫째는 과묵, 둘째는 무뚝뚝이었다.
반복된 첫 만남마다 그에게 든 감상도 역시 비슷했다. 20대 중반의 앳된 얼굴이지만, 속에는 큼지막한 고목이 한 그루 들어 있는 것 같다. 소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을 때면 그는 늘 저 표정으로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소람은 지난 생들과는 다른 첫 만남 장소를 둘러보았다. 지금까지는 새로 발령을 받아 온 그와 본부에서 만났다. 그가 이곳에 찾아온 건, 오늘 아침 국장실에서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가 서울로 오지 않는다면, 이번 생엔 한태운과 아예 엮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억지로 올 거 없으니 오기 싫으면 오지 마요.”
“…….”
한태운의 얼굴에선 여전히 감정을 읽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면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태운은 잠시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소람을 보며 대답했다.
“괜찮습니까?”
“……뭐가요?”
“제가 본부에 가지 않아도 말입니다.”
태운 자신의 안위가 괜찮겠냐는 건지, 아니면 균본부가 괜찮겠냐는 건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소람에겐 한 가지가 더 들렸다. ‘너는 괜찮겠어?’라는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