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 4
4화
그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며 수십 대의 카메라가 찰칵찰칵 소리를 냈다. 환호성이 들리자 조금 전 경찰의 호통을 듣고 닫혔던 창문들도 전부 활짝 열렸다.
“소람아, 누나네 엄마 너 때문에 카드 바꿨다! 누나는 5년 마신 커피 바꿨어!”
“소람아아악! 종이비행기는 어쩌고!”
“자다가 호출받아서 못 접었어요!”
소람은 일부 질문에 대답해 주며 균열 앞까지 올라갔다. 그러자 주변 반응은 더욱 거세어졌다.
결국 주변을 막던 경찰들도 시민들을 저지하는 일을 포기했다. 어차피 균본부에서 파견된 이능사가 도착한 이상 균열은 별일 없이 마무리될 것이다. 거기다 현장에 나타난 사람은 그 유명한 진소람이니까.
“사람 많은 데라고 바로 1급을 보내 주네요. 다행이다.”
“주변 회사 사장님이나 건물주도 혹시나 던전 터질까 난리를 피웠겠지.”
반대쪽에서 시민들을 막던 순경도 슬쩍 위쪽이 더 잘 보이는 자리로 왔다.
“히야. 인기 많네요. 사람들 회사에서 다 튀어나온 것 같네.”
“요샌 얼굴 반반한 이능사가 웬만한 연예인보다 낫지. 쟤, 진소람이 찍은 광고만 몇 개야.”
“그러니까요. TV 틀면 10분에 한 번씩은 보일걸요. 그런데 이능사도 공무원 아니에요? CF 같은 거 원래 안 되지 않나.”
“돈 벌어서 균본부랑 좀 나눠 갖겠죠. 거긴 좀, 정부 조직은 정부 조직인데 연예인 소속사 같은 느낌도 들잖습니까.”
“음, 그럴지도.”
그사이 소람은 하늘을 검게 가른 균열 앞에 도착했다.
가뭄 든 밭처럼 갈라진 틈새 내부는 한 점의 빛도 반사하지 않는 검은색이었다. 소람은 손바닥으로 지그시 균열 위를 짚었다. 허공에 생긴 금인데도, 표면을 만지면 까슬함이 느껴졌다.
“얼마 안 된 거네.”
시간이 지날수록 이 균열의 틈은 점점 더 벌어진다. 마침내 균열이 어느 크기 이상으로 벌어져 내부에서 괴생물이나 이상한 물질이 흘러나오게 된다.
그 현상은 ‘던전화’라 불리며, 던전화로 인해 균열 안에서 나온 것들이 점령한 일대는 던전이 되었다.
그래서 모든 균열은 던전화가 발생하기 전에 제거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아래쪽의 열렬한 환호와 달리 침대에서 일어난 지 30분이 채 되지 않은 소람은 손바닥으로 덮은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했다. 피곤에 푹 절은 얼굴은 본래라면 이 아래 있는 직장인들이 사무실에서 짓고 있었을 표정을 대신했다.
“빨리 하고 가서 마저 자야지…….”
소람의 허리춤에서 검이 뽑혀 나왔다. 현대적인 정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길쭉한 검이었다. 센 공격을 퍼부어 한 번에 터뜨리면 편하겠지만…….
‘최대한 조용히, 소란 없이 해결해야 된다.’
위에서 내려온 당부를 떠올리며 소람은 검을 쥐고 균열 위로 푹 꽂았다. 그리고 힘을 주어 칼을 아래로 긁어내렸다.
카드득!
균열의 표면에서 거친 바위를 긁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공격당한 파리지옥이 입을 닫듯 균열의 틈이 점점 좁아졌다. 소람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칼을 뽑았다가 다시 한번 세게 박아 넣었다.
카득!
같은 소리가 조금 더 이어지고, 틈은 빠르게 좁아져 갔다.
잠시 뒤, 균열은 하늘에서 흔적도 없이 제거되었다. 도심 한복판은 다시 어제와 같은 풍경으로 돌아왔다.
“어, 어, 사라졌다!”
“와, 올라가서 3분 컷 실화냐…….”
또 한 차례 셔터 소리가 울렸다. 할 일을 마친 소람은 킥보드를 탄 채 아래로 둥실둥실 내려왔다. 그대로 가장 앞에 있던 경찰들 앞으로 다가왔지만 완전히 착지하진 않고, 공중에 2m쯤 둥둥 떠 있었다.
“저기요.”
“아, 헉. 네!”
“이거 공공 킥보드 맞죠. 그럼 본부까지 타고 가도 돼요?”
“어, 그러니까…….”
머뭇거리는 경찰 대신, 뒤에 있던 사람이 대답을 주었다.
“타고 가! 그거 서울 킥보드라 서울 아무 데나 가도 돼! 근데 어플로 등록 안 하고 타면 벌금 나와! 두 배…….”
“그건 제 알 바 아니에요. 경비 처리하면 균본부에서 내 주겠죠.”
이내 소람이 걸터앉은 킥보드는 도로 둥실 날아올라 하늘 한쪽으로 사라졌다. 건물 위 높이까지 날아오르자 따라붙던 시선들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각성 등급 1급, 각성과 동시에 강화된 소람의 몸은 높은 고도의 압력에도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저 한겨울이라 날씨가 조금 추울 뿐이었다.
이윽고 그의 직장인 균열현상관리본부가 가까워질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진형우’
라고 저장된 첫째 형의 번호였다.
“네에. 중졸 새끼 전화 받았습니다.”
―…….
상대는 잠시 말이 없더니 곧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야야, 소람아. 너도 참, 형 전화를 그렇게 받냐. 응?
“전화할 때 그렇게 떴을 거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설마 형이 그런 짓을 했겠어? 진익재 놈이 바꿔 놓고 일부러 네 앞에서 전화벨 울리게 한 거야. 너 이렇게 오해할 거 노리고. 아니, 형이 너 이능사 활동하느라 고등학교 중퇴해야 했던 거 다 아는데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 형 마음 알지?
진익재는 소람의 둘째 형 이름이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이쪽의 답을 기다리며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났다.
“네에.”
그에 비해 소람의 대답은 귀찮음이 가득 묻어 있었다.
―너, 네라고 했어. 나 통화 시작할 때부터 녹음 중이었다. 그 일로 뭐라 하면 안 돼. 너 아버지가 작년에 절연 안 하는 조건으로 건물 하나 넘긴 거 다 알고 있어. 그게 얼마짜린데……!
“그건 경선 때 저랑 연 끊은 거 알려지면 떨어지게 생겼으니까 그런 거고요.”
진성태 의원은 1급 이능사인 막내아들의 이름값에 뒤늦게 탑승하려 했다. 그리고 소람을 달래기 위해 대가로 성남의 알짜 상가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간신히 유지했던 그의 국회의원직은 둘째 진익재가 대형 사고를 치는 바람에 일찌감치 마무리가 되고 말았다. 소람은 뉴스로 그 소식을 보고 지루하게 채널을 돌렸다. 그러게 형들 관리나 잘하라니까.
진씨 일가의 서열 순위는 이제 완전히 뒤바뀌었다. 명절에도 집에 얼굴을 비치지 않는 삼남이 공고한 1순위가 된 것이다. 진형우는 그에 대해 억울해할 자격이 없었다. 애초에 형제 사이에 먼저 서열을 만든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였다.
“왜 전화했어요?”
―아니…… 뭐, 꼭 이유가 있겠어? 그냥 안부 차…….
“친절하네. 잘살고 있어요. 다친 데 없고요. 그럼 끊어요.”
―소람아, 사실 이번에 모임 하나 하는데 네가……!
삑.
소람은 균본부 건물 옥상에 킥보드 바퀴가 닿자마자 이제 시간을 때울 필요도 없다는 듯 전화를 끊었다.
“음.”
하늘은 청명한데, 눈 뜨기 전부터 출동 알람을 받은 서글픈 날이었다. 게다가 계절에 안 맞게 더위를 먹은 건지, 영 기분이 아니다.
“퇴근해야지.”
라고, 아침 10시 넘어 회사에 도착한 공무원은 중얼거렸다.
* * *
최초의 균열 발생으로부터 20년, 사람들은 균열이 가진 위험성은 물론, 균열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이능사들과 공존하는 데에 익숙해졌다.
전 세계적으로 균열과의 싸움이 인류의 생존을 위한 최우선 문제로 대두되면서, 국내 이능사의 관리 및 균열에 대한 대응을 맡은 ‘균열현상관리본부’, 일명 균본부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로 부상했다.
소속 이능사들의 정점은 초창기 1급 각성자인 박재선 현장국장이었다. 막 40대에 들어선 그는 10년 전 발생한 제1차 대균열, 그리고 8년 전 발생한 제2차 대균열을 해결한 주역이었다.
“역시 반발이 거세네요.”
그가 말을 꺼내자, 맞은편에 앉은 60대의 2급 이능사, 부국장 권중오가 대답했다.
“처음부터 1급으로 각성한 것도 아니고, 그 지역에서 3급 이능사로 활동하다가 1급으로 재각성한 케이스니 더 놔주기 싫겠지. 2급 이능사 한 명을 대신 보낸다고 해도 당연히 떨떠름한 반응이고.”
두 사람은 아침부터 계속 회의를 이어갔지만 문제는 해결의 기미 없이 제자리를 맴돌았다. 박재선 국장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비서 민유라를 돌아봤다.
“소람이 출근했다니?”
“네. 7팀 사무실로 바로 가셨다고 합니다.”
“그 녀석이 웬일이래. 아침부터 일 시켰으니 다른 길로 새서 드러누워 있을 줄 알았는데.”
“안 그래도 기숙사로 올라가시려다가 오늘 구내식당 메뉴가 능이백숙이란 이야기를 듣고 걸음 돌리셨답니다.”
“걔는 나이도 어리고 돈도 많으면서 입맛이 왜 그러는지. 일단 가서 좀 불러와 줘. 오늘 같은 날 올라오라고 해 봐야 꿈쩍도 안 할 테니까.”
“네. 다녀오겠습니다.”
민유라 역시 ‘올라오라고 해 봐야 꿈쩍도 안 할 테니.’라는 말에 동의하며 국장실을 떠나 복도로 나왔다.
엘리베이터는 두 층을 내려가 멈춰 섰다.
종로에 우뚝 선 균열현상관리본부 건물. 그중 13층은 균열 현상이 터지면 호출을 받고 출동하는 이능사의 사무실이었다. 대부분 파견을 나가 이 층엔 대개 전체 인원의 30%가량만이 남아 있었다.
줄지어 배치된 사무실 중에서도 가장 안쪽에 위치한 현장 파견국 7팀의 사무실 앞. 민유라는 문을 두드렸다.
“네에.”
“진소람 수석님, 들어갈게요.”
“왜요……?”
물음을 무시하고 민유라는 문을 열었다.
7팀 사무실에 홀로 있는 진소람 수석은 푹신한 의자 위에, 더더욱 푹신해 보이는 이불로 몸을 돌돌 두르고 앉아 있었다. 한쪽 뺨을 책상에 붙이고, 이불 안에서 손만 꺼내 뭔지 모를 책을 넘겨보고 있는 저 사람이 바로…… 현재 전국에 23명밖에 되지 않는 1급 이능사 중 한 명이었다. 그것도 가장 유능하기로 손꼽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