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 2
2화
‘자식이 셋이나 있으니 하나쯤은 하자품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게 셋째일 줄 알았으면 둘에서 그만 낳았지. 쯧.’
목소리들이 고장 난 스피커처럼 노이즈를 흘리며 재생되기 시작했다. 방금 전 목소리는 소람이 여섯 살 즈음에 들은 말이었다.
진소람은 서울 동운구 을 국회의원 진성태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소람은 소위 말하는 느린 아이였다. 그러나 개천 용으로 성공한 국회의원 집안은 소람의 학습 속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 갖춰진 환경에서 저렇듯 모자라게 자랄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부모는 아이의 느림을 억지로 교정하려 했고, 성과가 부족할 때면 억지로 몰아붙였다. 혀를 차며 매를 들던 시선은 어느 순간부터 귀찮은 짐덩어리를 취급하는 눈빛으로 바뀌었다.
부모의 태도가 이러하니 형제들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소람은 가장 만만하며 함부로 대해도 좋은 막냇동생으로 자랐다. 그나마 제 몫으로 들어온 것도 빼앗기고,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진소람, 그거 한 대 맞았다고 우냐? 오랄 때 재깍 왔으면 처맞을 일도 없었잖아.’
‘왜 불렀겠냐? 오늘 받은 거 내놔 봐. 세뱃돈이 뭐 어쨌다고. 어쭈, 씨발, 야리네? 어어, 엄마한테 일러. 일러 봐.’
‘아휴. 뭐 그런 걸 나한테까지 말해. 너는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욕심만 부리고 집안 시끄러운 일을 만드니.’
그 악의와 냉대 속에서 소람은 열여덟이 되었다.
그해, 몇 년간 안정화되었다고 믿고 있던 국내 균열 발생의 주기가 깨졌다. 3년 전에 발생한 1차 대균열 이후 또다시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균열이 일어난 것이다.
전국이 검은 균열을 열고 나타난 끔찍한 괴물의 공격을 받았다. 이를 막기 위해 파견된 소수의 각성자들은 시민의 영웅이 되어 고군분투했다. 적어도 그 중계를 볼 때만큼은 형들도 소람을 괴롭히지 않았기 때문에, 소람 역시 구석 자리에서나마 화면을 볼 수 있었다.
눈부신 히어로들의 활약을 보며 이리저리 뛰는 심장을 쥔 채 어떤 바람을 품었던 것도 같다.
그로부터 며칠 뒤, 진소람은 1급 각성자가 되었다.
* * *
“막바지에 이르러 절망적일 정도의 위력을 자랑했던 제2차 대균열, 그 최전방을 현직 재난 안전 본부 요원들이 막아냈다면, 도심 곳곳에서 시민들을 지켜 낸 건 세 명의 고등학생 각성자들입니다. 마치 하늘이 도운 것처럼 위기의 순간에 각성해 나타났죠.”
“예, 세 사람은 각각 부산시 어룡고등학교의 서민기 학생, 경기 양주시 남동고등학교의 김가을 학생, 서울 가양외국어고등학교의 진소람 학생입니다. 놀랍게도 모두 고등학교 2학년 동갑내기인데요, 이 세 학생이 구한 인명 합계만 1만 명이 넘을 것이라 추산되고 있습니다.”
“그중 진소람 학생은 현직 국회의원인 진성태 의원의 삼남이란 사실이 알려져서 화제의 중심에 섰죠.”
가물가물한 머리가 서서히 깨어났다. 시선을 내린 곳에 몸을 감싼 환자복이 보였다. 4차 대균열 앞에서 전투복을 입고 있을 때보다 팔다리가 짧았다. 모든 기억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상황이 정리되었다.
소람은 이 상황을 처음 겪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격통이 몰려올 위치도 이미 알고 있었다. 오른팔, 오른 다리, 그리고 찢어진 등까지. 열여덟의 진소람은 능력을 각성하자마자 한시도 쉬지 않고 사람들을 구하러 뛰어다녔다. 평생 머저리 취급만 받다 히어로가 된 애새끼는 잔뜩 신이 나 날뛰었다.
이 시간으로 몇 번이고 다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까 마음껏 몸을 혹사시켰겠지.
“진성태 의원님, 아드님은 평소 어떤 분이셨습니까?”
“우리 소람이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하고 심성이 여린 아이였습니다. 이런 아이의 어깨에 각성자라는 커다란 짐이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몸도 약한데 어디서 다치지 않을까 저나 아내나 소람이 형들까지 온 식구가 크는 내내 노심초사했는데……. 후우, 이렇게 부상을 입어 쓰러진 모습을 보니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것과 별개로 아버지로서 마음이 찢어집니다.”
“그러셨군요. 지금도 걱정이 많으시겠…… 어, 감독님. 소람 학생 깨어난 것 같은데요?”
“카메라, 저쪽 병상 쪽으로 찍어. 소람 학생 확대해.”
“소람 학생, 목소리 들리세요?”
소람 학생. 그 말이 지금 상황에 쐐기를 박았다. 소람이 그대로 28살이었다면 그를 학생이라 부를 사람은 없을 테니. 즉, 남의 눈에도 그가 어려 보인다는 의미였다.
진소람은 또다시 과거로 돌아왔다.
‘진 수석님, 당신은 살아야 해.’
죽는 순간에 들었던 목소리가 머릿속을 계속해 맴돌았다. 할 수만 있다면 뇌를 파내서라도 지우고 싶은 목소리였다.
“소람 학생, 우리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
“소람아, 힘들겠지만 국민들께서 널 많이 궁금해하신단다. 아빠는 네가 자랑스럽…….”
“아아아악! 미친, 씨발!”
“……음?”
“거길 왜 끼어들어서 매번 지가 먼저 뒤져 버리냐고! 씨발! 씨바아알! 누가 구해 달래! 왜 자꾸 날 구하는데! 왜!”
두 주먹이 분풀이를 하듯 침대를 내리쳤다. 이가 뿌득 맞물렸다.
“미친 새끼. 죽는 게 그렇게 좋으면 혼자 뒈지든가!”
대체 왜 바라지도 않는 사람에게 목숨빚을 지우느냔 말이다. 울분에 찬 외침이 병실을 울렸다.
“의원님, 소람…… 학생, 분명 조용한 성격이라고…….”
곱상하게 생긴 남학생에게서 쏟아진 걸걸한 욕설을 들으며 기자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놀라 얼이 빠져 있던 진성태 의원도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아니. 진소람이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으니 이만 카메라 꺼요. 다들 나가!”
“한태운. 씨발, 하……, 개새끼…….”
실랑이를 벌이는 촬영팀과 아버지는 소람의 안중에 없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오직 지난 생의 마지막 순간뿐이었다. 대체 나를 왜…….
무려 세 번이나, 목숨을 버려 구해 주는지.
소람이 열여덟 각성 직후 순간을 살아가는 건 이번이 네 번째였다.
이유도 모른 채 반복되는 삶 속에 소람은 매번 국가 소속 이능사가 되었다. 그 안에서 매번 한태운이라는 남자와 이능사 동료로 만났으며, 위기 상황에 그가 던진 목숨으로 살아남았다.
그 이후 소람 자신도 죽음을 맞이하면 열여덟 살, 이 시간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
소람은 무언가에 짓눌리기라도 한 것처럼 환자복 입은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그는 무릎과 팔로 만든 어둠 속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창밖에선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되돌아온 시점이 제2차 대균열 파훼 직후이기 때문이었다.
이후 한국엔 몇 년간 평화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 끝엔 제3차 대균열과 제4차 대균열이 발생한다. 지금 학생에 불과한 소람도 그때면 곧 신설될 정부 기관인 균열현상관리본부에 수석 이능사라는 지위로 소속되어 있을 것이다.
스물여덟에서, 또다시 열여덟이었다.
허망한 죽음의 순간에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후회였다. 차라리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면 좋을 텐데. 후회를 기억한 채 과거로 돌아오면 생겨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이었다. 같은 시간을 다시 살아간다면 아쉬웠던, 실수했던,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학생이었던 이능사 이아영에게 더 신경을 기울이고.
제3차 대균열 사태에서 서민기와 박재선 국장이 허무하게 죽게 두지 않고.
북한산 화재 던전 전후로 더 적절한 조치를 취하며.
김가을이 오명을 쓰고 비난을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게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나은 결과가 있었을지도 몰라, 하는 수많은 순간들이 진흙탕처럼 무겁게 가라앉은 그를 두드렸다.
하지만 희망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효력이 닳아 갔다.
이번에야말로 성공할 수 있다며 벌떡 일어나기엔 몸도, 마음도 너무 많이 지쳐 있었다. 네 번째로 이 순간을 맞이한 지금, 소람은 도저히 푹 꺾인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세 번을 실패했는데…….”
이번이라고 다를까. 그런 의심도 무기력 위에 더해졌다.
“진소람!”
그 때, 병실 문이 벌컥 열리며 분에 차 얼굴이 시뻘게진 진성태 의원이 들어왔다.
“너 미쳤어! 어디서 못 배워 먹은 쌍소리야, 기자들 다 보고 있는 앞에서! 눈이 있으면 카메라 있는 상황 안 보여!”
보는 눈이 사라지자 원래 모습대로 돌아온 그가 위협하듯 발소리를 내며 침대로 다가왔다.
“앞으로 기자들 앞에선 처신 똑바로 해라. 영상 지우라고 하긴 했지만, 나중에 이 얘기 나오면 아직 눈앞에 균열에서 나온 것들이 있는 착각을 봤다고 말해. 알겠어?”
“…….”
진성태 의원은 몹시 화를 내며 들어왔지만, 사실 아주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아무렴, 자식 중에 그 대단하다는 1급 각성자가 나왔다. 소문을 듣고는 당 대표까지 직접 전화를 준 참이었다.
하지만 그는 계획적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막내아들 진소람은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 잔뜩 주눅이 들어 죄송하다 빌 녀석이었으니까. 그러면 이번만 용서해 줄 테니, 앞으론 실수 없도록 지시하는 대로만 하라며 단단히 못을 박아 둘 생각이었다.
분명 그럴 예정이었는데.
이채 없는 눈으로 마지막 기억보다 젊어진 진성태 의원을 보던 소람이 입을 열었다.
“……싫은데요. 눈 뜨자마자 좆같은 상황이 보이면 씨발 소리 좀 할 수도 있지.”
“뭐,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