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 10
10화
“뭐하러 이 시간에 준비까지 마쳤어요. 엘리베이터만 타고 내려가면 되는데.”
“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기숙사는 지낼 만해요? 이 방 어때요?”
“네. 좋습니다.”
“잘됐네. 한태운 씨 옆방으로 해 달라고 내가 부탁했거든요. 나랑 연결된 방 아무도 안 쓰려고 해요. 왕따 당해요, 나.”
“…….”
“방 좋다니 더 잘됐네요.”
소람은 태운의 방을 기웃거리며 기지개를 켰다.
소람의 머리보다 시야가 높은 태운에겐 풀잎처럼 삐죽 서서 흔들거리는 머리카락 한 가닥이 너무나 눈에 띄었다. TV 속 히어로였던 그에게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던 태운이 곤란하게 눈동자를 굴리건 말건, 소람은 후줄근한 차림으로 계속 서서 말했다.
“오늘부터 출근이죠?”
“예.”
“아마 오전엔 행정 처리하면서 교육이니 뭐니 들을 거고…… 일찍 끝나면 기숙사 돌아와서 쉬고 있어요. 지금 다른 팀원도 없고, 저도 오전에 회의 불려 가거든요. 사무실 혼자 가 있어 봤자 할 일 없을 거예요.”
“근무 시간에 그래도 괜찮습니까?”
“균열이 낮밤 가려 터지는 거 아니고, 우린 호출 오면 언제든 튀어 나가야 해요. 근무 시간이랍시고 정해 놓은 게 무의미하지. 아, 한태운 씨도 오늘부턴 이거 차겠네요.”
소람이 왼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손목에 매인 호출기는 잠옷 차림임에도 여전히 착용하고 있었다.
“그럼 이따가 봅시다. 점심 먹지 말고 있어요. 같이 먹게. 나 이만 갈게요.”
소람은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문을 닫았다. 태운은 벽 너머를 가늠하듯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곤 거실 소파에 걸터앉았다.
소람이 다시 태운을 부른 건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이번엔 노크가 아니라, 전화 통화였다.
―한태운 씨. 13층으로 내려와요.
13층 엘리베이터가 열린 곳 바로 앞에 소람이 서 있었다. 오전에 회의가 있다 했던 그는 아까와는 달리 멀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소람이 그의 손목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태운의 손목엔 자신과 같은 검은 밴드 모양의 호출기가 채워져 있었다.
“갑시다. 첫 출근 해 봐요.”
소람이 복도 안쪽을 가리켰다.
“여기 13층이 현장 파견국 사무실로 쓰이는 층이에요. 앞에서부터 1팀, 2팀 순서대로… 아, 우리 팀은 7팀이에요. 제일 끝 팀. 이거 말 안 했죠.”
“국장님께 들었습니다. 진소람 씨가 7팀 팀장이고, 제가 밑의 팀원으로 들어갈 거라고요. 혹시 팀장님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이름이 더 편해요. 현장 파견국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다 그런 편이에요. 나이순이 별로 의미가 없는 곳이잖아요.”
이능사들은 각성 나이도 제각각, 그리고 등급도 제각각이다. 실제 전투에선 숫자로 표현된 등급이 더 우선시되지만, 그래도 공무원 사회니만큼 연차에 따라 주임, 선임, 책임, 수석의 구분은 있었다. 그리고 오늘 막 들어온 신입 주임 태운은 소람의 뒤를 따라 걸었다.
“여기가 2팀, 3팀…… 4, 5, 6팀이 팀원 수가 많아서 좀 널찍한 방 가져갔어요.”
소람이 어느 문 앞에 멈춰 섰다.
“여기가 7팀 사무실.”
“…….”
7팀의 사무실은 복도 가장 끝 방이었다. 감상은 한마디로…… 작았다.
예를 들어, 넓은 방이라는 4팀 사무실은 4팀 팻말이 나오고 그다음 5팀 팻말이 나오기까지 스무 걸음 이상을 걸을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7팀은…… 열 걸음은 간신히 될까. 크기도 어느 한 팀의 사무실이라기보단 학교 교실 정도로 보였다.
태운의 머릿속에 아침에 흘리듯 들은 ‘왕따 당해요, 나.’라는 말이 울렸다.
“들어갑시다.”
소람은 태운의 시선을 눈치챈 것 같으면서도 태연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부는 두 공간으로 나뉘었다. 한쪽엔 파티션이 쳐진 업무용 책상이, 그 옆 공간엔 의자 네 개가 놓인 원형 테이블과 화이트보드가 있었다. 그 뒤엔 <팀장실>이라 붙은 개인실 문이 보였다.
7팀의 사무실은 겉보기엔 인원이 적은 소규모 회사의 풍경과 거의 비슷했다. 책상이나 곳곳에 아무렇지 않게 놓인 무기들을 제외하면.
소람은 사무실의 불을 켜며 들어왔다. 즉 지금까지 출근한 인원이 아무도 없다는 의미였다. 사무실 내부에도 사람이 가꾸며 사용한 흔적이 거의 없었다. 소람이 벽의 히터를 틀자 그나마 훈기가 좀 돌았다.
“앉아요. 잠깐 기다리면 다른 팀원도 올 거예요.”
“예.”
그의 앞에 앉은 소람은 태블릿을 켜 오전에 받은 메일을 열었다.
“음, 보자. 1급 각성한 진 얼마 안 됐지만, 3급으로 활동한 시간이 있어서 전투 능력은 굉장히 안정적이라고 하네요. 균열 제거 경험도 몇 번 있고요.”
라고 써 있는 이력은 휙휙 넘겼다. 어차피 이 부분은 서론이었다. 그리고 곧장 태운의 종합 능력치 평가표로 왔다.
이내 소람은 속으로 입을 떡 벌렸다.
‘하…….’
이거 뭐 하는 인간이야.
저번 생에 아무리 그를 무시했다 해도 태운이 상당히 강한 이능사란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연구실에서 정리해 준 수치로 확인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보고서는 여섯 개 항목을 육각형 형태로 나타내 능력치를 표시했다. 육각형의 중앙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능력치가 강하다는 의미이고, 정육각형 가이드라인 안에 그려진 도형이 고른 모양일수록 능력이 골고루 발달했다는 의미였다. 찌그러진 모양이라면 어느 한 가지 능력치가 특화된 것이다.
그리고 태운의 것은 가이드라인을 꽉꽉 채운 완전한 정육각형 형태였다. 속도 점수가 아주 조금 낮긴 하나 평균을 내면 1급 이능사 기준을 거뜬히 넘었다.
때에 따라선 가이드라인을 넘어설 정도로 극단으로 특화된 능력이 필요한 순간이 있지만, 우선은 태운의 능력치가 가장 이상적인 형태였다. 이 결과를 본 순간 본부는 태운을 절대 돌려보낼 수 없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점은.
「특수 능력 ― 분류 불가」
특수 능력은 각성자들이 보편적으로 발달한 근력, 속도, 감각 외에 또 하나 주어진 고유한 능력을 말했다. 소람처럼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 등이 예시였다.
특수 능력은 대개 각성 직전에 간절히 바란 기원에서 비롯된다. 괜히 ‘각성 기원을 꿈꾸는 법’ 같은 책이 유행을 탄 게 아닐 정도로, 사람이 품은 간절한 바람은 각성에 영향을 미쳤다. 치명상을 입은 자식을 발견한 어머니가 상처 치유 능력을 각성했다는 감동 실화 등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렇게 개개인의 사정에 따라 다르게 부여된 능력은 각성자들의 핵심 기술이 되거나, 혹은 공격에 시너지를 보태는 방향으로 이용된다. 이게 분류 불가로 표시된 건, 한태운이 육각형을 꽉 채운 점수를 특수 능력 없이 완성했다는 의미였다. 즉 각성하며 증가된 기본 능력치 자체가 우수하다는 것이다.
초반부터 좀 잘 가르쳐 줬으면 훨씬 빨리 성장했겠네.
지난 생엔 태운과 같은 팀이 되어서도 계속해 피하고, 도망치고, 밀어냈다. 하지만 이번 생엔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스물여섯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약간의 짜증이 찾아오긴 하지만……. 동시에 체념도 들었다. 자신과 달리 저 혼자만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 태운의 앞에 소람은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이론은 교육 때 다 들었을 거고, 팀에서 하는 일 간단히 인수인계할게요.”
“예.”
그는 흰 메모장을 열었다. 슥슥 옮겨진 펜이 ‘현장 파견국’이란 글씨를 쓰고 그 테두리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동그라미에서 아래로 선이 죽 이어지더니 ‘7팀’이라고 적혔다.
“균본부 안에서 각성자들은 다 현장부서 소속이에요. 우리 팀은 현장부서 두 개 국 중 파견국 산하에 있어요. 기본적으로 현장 파견국 이능사가 하는 일은 균열 관련한 사태의 해결이에요. 거기에 더해 간혹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관할 부서의 요청을 받고 출동하기도 하고요.”
“예.”
“파견국엔 1, 2급 혹은 전투 능력이 특화된 3급 이능사까지가 소속돼 있어요. 다른 팀은 1팀, 2팀 이렇게 부르는데 우리 7팀은 따로 부르는 별칭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불러서 이미 들어봤을 것 같은데. 비행팀이에요.”
국장도, 교육 담당도 7팀을 한 번씩 비행팀이라 칭했었다. 소람은 7팀이라는 글자 왼쪽에 1~6팀이라고 적고, 7팀과의 사이에 금을 그었다. 1~6팀 아래엔 지상팀, 7팀 아래엔 비행팀이라는 글씨가 더해졌다.
“이렇게 나눠진 기준은 이능사의 자가 비행 가능 여부예요.”
소람이 고개를 들어 태운을 보았다.
“한태운 씨 날 수 있죠? 나처럼.”
“예, 진소람 씨처럼은 아니겠지만.”
“능력의 세세한 조건이야 각성 기원에 따라 다르겠죠. 아무튼 7팀은 스스로 날 수 있으며, 어느 수준 이상의 전투력을 갖춘 희귀한 인원들이 모인 비행팀이에요.”
“이능사 중에는 공중 전투가 가능한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도약과는 달라요. 한 번 박차는 걸로 5층 건물 높이까지 뛰는 무서운 지상팀 이능사들도 있지만, 자력으로 중력을 거슬러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 능력만 비행으로 쳐요. 단적으로 말해, 지금 당장 바닥이 무너져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요. 이러면 범위가 확 줄어들죠.”
메모장에 동그라미와 직선으로 된 사람 그림 두 개가 더해졌다. 지상팀 아래 그려진 사람의 밑엔 아래에서 점프해 올랐다는 의미의 곡선이 그려졌고, 비행팀 아래 사람은 등에 날개가 그려졌다. 몹시 못 그린 그림이어서 다른 사람이라면 웃음이 터질 수도 있었겠지만 태운은 그마저도 진지한 얼굴로 보았다.
“우리가 지상팀에 비해 더 세다 할 건 아니지만, 이렇게 고층 빌딩이 빡빡하게 밀집한 도시에선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거든요. 그런 일들이 이 팀의 몫으로 오게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