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 1
1화
Cloudless Sky 1부
0. Prologue
간절한 바람은 기적을 일으킨다.
우직한 신념, 생존본능, 이기적인 욕심, 애정과 헌신. 무엇이든 소망을 향해 몸을 내던진 인간은 신과 같은 힘을 내곤 한다. 하늘이 도운 것이라 말하는 그 모든 일들은 결국 간절한 바람 없이는 생길 수 없었다.
다만 찾아온 기적이 모두에게 축복인 것은 아니었다. 인간은 끝내 신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쿠웅―
허리가 부러진 고층 건물이 서서히 바닥으로 기울었다. 추락 소리는 마치 거대한 재앙이 가까워지는 발소리처럼 들렸다. 도심 한복판의 건물이 쓰러지며 주변 건물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눈앞을 뿌옇게 만든 흙먼지 뒤로 남은 생존자의 수십 배는 될듯한 수의 변이체가 다가왔다.
대한민국에 찾아온 네 번째 0급 재해, 제4차 대균열 토벌 작전은 실패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새파랗게 맑은 하늘, 허공부터 지상까지는 커다란 검은 금이 그어져 있었다. 검은 틈새는 지난 이틀간의 필사적인 방어전을 비웃듯 또다시 괴물 같은 변이체를 우수수 쏟아 냈다.
“엄마, 지금부터 바로 엄마가 좋아하는 잡채 해 먹어. 그거 다 만들고 먹을 때까진, 내가 버텨 볼게.”
옆에서 통화하는 소리를 들은 소람이 고개를 돌렸다. …사랑해. 마지막 말로 통화를 마친 아영은 휴대폰을 꾹 쥐었다가 옆으로 내던져 버렸다. 어차피 다신 저걸 볼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
이아영, 올해 막 20살이 된 이능사는 그 손에 억지로 무기를 다시 쥐었다. 벌벌 떨리는 턱 아래로 눈물이 떨어졌다. 조금의 희망도 남지 않은 상황을 덤덤히 받아들이기엔 아직 지나치게 어린 나이였다.
“아아아악!”
“왜, 왜 더 커지는 거야! 왜! 이 많은 사람 목숨을 다 잡아먹어 놓고!”
“나, 난 죽기 싫어! 시발, 살고 싶다고… 끄흑……!”
아영뿐만 아니라, 마지막까지 희망을 다잡으며 싸우던 이들 사이에 절규가 퍼져나갔다. 그 소리를 듣고 아영 역시 뺨의 진동이 조금 더 거세어졌다. 이 순간 표정 변화가 없는 유일한 사람은 소람뿐이었다. 아영의 옆에 서 있던 그는 앞으로 먼저 한 발을 디뎠다.
“이아영 이능사.”
“……네, 수석님.”
“뒤로 물러나세요. 최대한 후방에 있어요.”
후방이라면 전열을 이탈하기도 쉽다. 이미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현장에서 도망친 이능사도 적지 않았다. 아영이 지금이라도 집에 돌아간다면, 사랑하는 가족과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몇 년간 제대로 된 역할조차 하지 않은 책임자의 마지막 위선이었다.
아영은 예상대로 ‘이 인간이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그러나 진소람은 이미 검을 다잡고 앞으로 발을 박찬 뒤였다.
피와 흙먼지가 눌어붙은 무기만큼 그의 몸에도 부상이 빼곡했다. 몰려오는 변이체 무리에게 가까워지는 걸음이 절룩거렸다. 하지만 소람은 괴물들에게 다가가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그를 가장 먼저 발견한 건 얼굴을 포함한 온몸에 검은 뿔이 돋은 산양 형상의 변이체였다. 4차 대균열의 변이체들은 기괴한 모습으로 변형된 대형 동물들이었다. 소람은 치켜든 검을 위로 길게 그으며 생각했다.
이번엔 여기서 죽겠구나.
―키아아아아악!!!
옆구리를 깊게 베인 변이체가 괴성을 질렀다. 휘둘러진 검이 변이체를 향해 날카롭게 세워졌다. 주변으로 그가 가진 힘의 고유한 형상인 푸른 안개가 어렸다. 검은 그대로 변이체의 귀 뒷부분에 들이박혔다.
푸욱!
―키으이으이이……!
숨이 끊긴 변이체는 치명상을 입은 부위부터 검은 잿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그건 균열에서 쏟아진 수만 구의 변이체 중 겨우 하나일 뿐이었다. 소람의 주변엔 벌써 십여 구의 변이체가 몰려들었으며, 하늘에선 아직도 각양각색의 변이체가 내려오는 중이었다.
소람은 한 발 더 앞을 디뎠다. 크기가 건물 한 층 정도는 될 것 같은 거대한 황소의 다리가 베어졌다. 변이체의 몸이 기울어진 틈에 이번엔 목을 날렸다.
다행히 아직은 몸이 제대로 움직였다. 그는 허리를 뒤로 돌려 새로운 변이체의 몸통을 베어냈다. 검 길이보다 두꺼운 가죽이 잘려 나갔다. 그게 잔해로 변하기도 전, 다음, 또 다음 변이체를 공격했다.
소람이 가장 앞에서 눈에 띄게 움직이자 앞으로 전진하던 변이체들도 방향을 돌렸다. 변이체 수십 구의 핏발 선 눈알에 그들보다 훨씬 작은 한 명의 인간이 담겼다.
정체 모를 짐승이 침을 뚝뚝 흘리며 그의 목덜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카앙!
얼굴 앞으로 돌진한 이빨이 검으로 가로막혔다. 그러나 동시에 등 뒤로 다가온 다른 변이체의 발톱은 막지 못했다.
“아, 윽…….”
피가 바닥으로 울컥 떨어져 내렸다. 근육이 끊어졌는지 공격당한 왼 어깨가 움직이질 않았다. 다행히 검은 오른손에 들려 있었다. 소람은 뺨이 불거질 정도로 이를 악물며 검을 움직였다. 변이체의 벌린 입을 칼로 찢어내고 뒤를 돌아 발톱에 피가 묻은 다른 괴물에게 덤벼들었다.
초겨울을 맞이한 나뭇가지가 잎을 떨구듯 소람이 움직이는 자리마다 핏방울이 고였다. 소람은 너덜거리는 몸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해 검을 휘저었다.
마지막까지 변이체를 상대하다, 이 자리에서 저들에게 찢겨 죽는다.
소람은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그렇게 예감했다.
그는 계속해 가장 앞에서 홀로 싸웠다. 이 전장에 몇 명인가 이능사가 더 남아있긴 하지만 그의 주변으로 다가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진소람은 늘 가장 앞에 서는 대신 독선적으로 지휘권을 휘두르던 수석 이능사였다. ……이번 생에는 그런 모습으로 대균열을 막아보려 했으나 결국엔 지금처럼 실패하고 말았다. 스스로의 실책이니 이 상황을 쓰게 생각할 이유도, 자격도 없었다.
쿵, 쿵, 쿵, 쿵…….
땅을 울리는 묵직한 발소리가 났다. 커다란 발이 땅을 디딜 때마다 아스팔트가 갈라졌다. 다른 변이체를 상대하던 소람이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형상이 뭔지 짐작이 안 될 정도로 거대한 변이체가 발톱을 번쩍 들어 올린 뒤였다. 그의 위로 그림자가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앙!!!
“아아악!”
이지가 없는 짐승은 잔인하게도 소람을 한 번에 보내 주지 못했다. 대신 한쪽 다리를 완전히 짓이겼다. 무자비한 힘에 허벅지 아래가 완전히 뜯겨 나갔다.
“아, 아……, 하…….”
말도 안 되는 고통은 오히려 감각을 마비시켰다. 소람은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알았다. 파리하게 질린 얼굴빛과는 다르게 바르르 떨리는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으니, 분명 다음 공격으로 죽고 말 터였다.
“지, 진 수석님! 괜찮으십니까!”
“가까이 오지 마!”
소람은 남을 힘을 짜내 외쳤다. 그에게 다가오려던 이능사가 멈칫했다.
“저리 꺼져! 이쪽으로 오면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야!”
그가 사납게 말했다. 4차 대균열을 막아낸다는 제1의 목표가 실패했으니, 차악으로 바라던 결말이라도 내기 위해선 주변에 아무도 다가와선 안 됐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흙먼지가 일었다. 황색 구름 뒤로 다시 한번 그림자가 치솟았다.
죽음을 코앞에 둔 상황은 언제나 느리게 흘러갔다. 소람은 그 모습을 전부 눈에 담았다.
이대로 혼자 죽는다면, 적어도 최악의 결말만은 피할 수 있다.
반드시 ‘혼자’ 죽는다면.
그러기 위해 소람은 변이체들의 가장 앞으로 튀어 나갔으며, 아영 외의 다른 한 명의 팀원을 일부러 다른 장소로 보냈다. 이제 전부 준비가 되었다.
마지막 순간, 소람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팍!
누군가가 소람을 옆으로 밀쳤다. 이미 반쯤 무너져 있던 몸은 저항도 못 하고 뒤로 넘어졌다.
흙먼지 위로 밀려난 소람은 땅을 짚어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소람의 목소리보다 한참 낮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커헉.”
소람이 원래 있던 자리엔 변이체의 발톱에 상반신이 꿰뚫린 남자가 피를 쏟고 있었다.
“왜…….”
핏발로 얼룩덜룩해진 소람의 흰자위가 크게 뜨였다.
이 근처는 절대 올 수 없도록 배치했는데, 어째서.
“한태운.”
왜 네가 또다시.
소람의 얼굴에 이 순간 처음으로 절망이 드리웠다. 그가 예상한 결말 중 가장 최악의 상황이었다.
“안 돼, 안 돼!”
바닥의 시멘트 조각을 붙잡고 기며 소람은 손을 뻗었다. 그 처절함에도 불구하고, 공격은 그대로 이어졌다. 한태운의 몸통을 파고든 것이 뒤로 빠져나가고, 다시 날카로운 발톱 끝이 그에게로 휘둘러졌다. 짧은 순간, 한태운의 검은 눈동자가 소람에게 스륵 향했다.
“……진, 수석, 님.”
그리고 소람은 핏물이 엉겨 붙은 그의 입술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있었다.
“하지 마!”
소람이 절규해도 그의 입술은 기억 속의 모습과 똑같이 움직였다. 죽음의 형태가 달라도, 그가 자신에게 남기는 말은 늘 같았다.
“당신은 살아야 해.”
그림자가 한태운을 삼켜 갔다. 선명히 보이던 얼굴이, 부상으로 얼룩덜룩한 몸이, 그리고 검은 전투복에 둘러싸인 다리까지. 말을 마치자마자 그가 있는 자리에서부터 소람의 얼굴로 피가 튀었다.
“안 돼…….”
한태운이었던 몸이 바닥으로 무너지고, 온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검붉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붉고 진득한 액체가 땅을 짚은 소람의 팔까지 흘러왔다. 형체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핏덩어리 속에 감긴 눈만은 똑똑히 보였다. 그는 숨을 쉬지 않았고, 움직이지 않았다. 한태운은 진소람을 구하고 죽었다.
이렇게 또다시.
“안 돼, 안 돼! 씨발, 한태운! 뒤지지 마! 나보다 먼저 죽지 말라고! 한태운!”
당연하게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소람은 피가 덕지덕지 엉겨 붙은 시멘트 가루를 쥐고 소리쳤다.
“이, 이 개새끼야! 왜! 씨발, 왜 또 나한테 이래! 싫어! 하지 마!”
뺨에 묻은 피가 피눈물처럼 흘러내렸다. 소람이 아무리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한태운이 사라진 자리에선 대답이 없었다.
“아, 아…….”
소람은 그가 죽은 자리를 허망하게 바라봤다. 한태운이 벌어 준 시간으로 어쩌면 도망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얼마를 더 산다고 해도, 이미 결말은 정해졌다.
소람을 구하려 다른 이능사들이 다가오려 했다. 소람은 울분으로 끌어낸 마지막 힘으로 그들을 멀리 밀쳐 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초점 잃은 눈으로 앉아 있었다.
“또 만나자. 개 같은 새끼야.”
짓씹듯 내뱉은 말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피 냄새를 맡은 다른 변이체가 다가와 발을 쳐들 때까지, 발아래에 온몸이 깔릴 때까지, 소람은 그 자리에서 붙박인 듯 한태운의 시체를 바라보다 죽음을 맞이했다.
.
.
2024. 08. 07
대한민국, 제3차 대균열 저지
.
.
2025. 10. 15.
대한민국, 제4차 대균열 발발.
송파구 일대 주민 긴급 대피 발령.
2025. 10. 17.
한태운 주임 이능사(1급) 사망.
진소람 수석 이능사(1급) 사망.
서울 전역 던전화.
2025. 10. 19.
수도권 일부 제외 던전화.
부산 대규모 균열 발발.
2025. 10. 21.
NCRO(국제 균열 재난 구조 연합) 한국 지역 구조 포기 선언.
2025. 10. 2―
―…… ―
.
.
…
.
.
20……―
―………
2015―
……―
2014. 02. 07.
대한민국, 제2차 대균열 저지. (2…회차)
.
.
2014. 02. 07.
대한민국, 제2차 대균열 저지. (…회차)
2014. 02. 07.
대한민국, 제2차 대균열 저지. (4회차)